해직 교사와 14살 아이들의 마지막 합창

2009. 2. 14. 22:16관심사

해직 교사와 14살 아이들의 마지막 합창
"배우고 가르치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참관기] 해직 김윤주 교사 제자들의 졸업식... "꼭 다시 돌아오세요"
  박상규 (comune)
  
일제고사 관련 해임된 김윤주 교사가 13일 오전 담임으로 근무한 서울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졸입식에 참석했으나, 김 교사 해임 이후 담임을 맡은 교감이 교단에 서서 졸업식을 진행하고 있다.
ⓒ 권우성
김윤주
  
졸업식이 진행되는 동안 교단에 서지 못한 김윤주 교사가 졸업생들에게 아쉬운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 권우성
김윤주

어느 가수는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며 다가오지만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며 다가온다고 노래했던가.  

 

지난 12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은 김윤주 교사 제자들의 졸업식을 보기 위해 서울 청운초등학교로 향하는 13일 아침. 비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 비는 가뭄 해갈에 도움이 될까'라는 기특한 생각 같은 건 들지 않았다. 그런 것보다는 비 내리는 날의 졸업식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했다.

 

애정의 끝을 확인하고 뒤돌아서는 연인들의 이별 모습과 초등학교 졸업식은 분명 성격이 다르지만, 날씨라는 변수는 뭔가 특별한 풍경을 상상케 했다.

 

약 2개월 전에 있었던 교사 해직 사태. 철거민들 5명과 경찰 1명이 거리에서 갑자기 사망하는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해직 교사는 이젠 뉴스도 아니다.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 없고, 무뎌지고 잊히는 건 세상의 작동원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상처가 있는 법이듯,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잊어서는 안 되는 이와 지울 수 없는 역사라는 게 있다. 다소 버거울지라도, 그런 망각을 넘어서려는 몸짓이야말로 세상을 이끌어 가는 이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비오는 날 방문한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아이들 30여 명은 바로 망각을 넘어서는 몸짓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잊고 지나치는 세상 앞에서 펼쳐 보였다.

 

'전' 담임 김윤주 교사가 교실에 들어서기 전부터 교실에는 노란 풍선이 가득했고, 복도 쪽 창가에는 작은 현수막이 걸렸다. 풍선에는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는 글귀가 쓰여 이었다. 반 아이들의 사진이 모두 새겨진 현수막에는 김 교사에게 보내는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김윤주 교사가 아이들이 보내는 편지글이 적힌 현수막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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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
  
김윤주 교사가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가 적힌 노란풍선을 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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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

보미는 "저는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졸업할 수 있어 좋아요, 언제나 샘 옆에서 도와드릴게요"라고 적었다. 예지는 "졸업 안 할래요, 선생님하고 더 있고 싶어요"라고 썼다.

 

김윤주 교사는 검은색 투피스 정장에 푸른빛이 섞인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오전 10시 30분께 교실에 들어섰다. 김 교사는 "오늘이 교단에 서는 마지막 날이 될 수 있으니, 좀 차려 입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아이들도 그런 선생님을 보고 웃었다. 이날 청운초교는 김 교사의 졸업식 참여를 허락(?)했다. 

 

교실마다 배치된 TV를 통해 졸업식은 진행됐다. 교장선생님 말씀, 학교운영원장 말씀, 그리고 송사와 답사가 이어지고 애국가를 함께 합창해도 아이들은 별다른 감흥이 없는 듯했다. 그런 '의식'이 모두 끝난 뒤에야 김 교사와 아이들의 소통의 장이 열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배웠던 것일까. 아이들은 사람 감동시키는 법을 영특하게 알고 있었다. 졸업장은 김 교사가 오기 전에 이미 배포됐지만, 아이들은 그걸 다시 모두 거둬 모았다. "우리들의 담임 선생님에게 직접 졸업장을 받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김 교사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호명하며 앞으로 불러냈다. 김 교사는 자신이 졸업 선물로 준비한 손수건과 '성장 보고서'를 나눠주며 아이들과 동등한 자세로 악수를 했다. 손수건에는 자신의 얼굴 캐리커처와 더불어 반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새겼다. 그리고 성장 보고서에는 아이의 특징과 편지를 담았다.

 

  
졸업생들이 김윤주 교사에게 직접 졸업장을 받고 싶다며 이미 받은 졸업장을 다시 모았다. 김윤주 교사가 졸업생들에게 졸업장을 직접 전달하고 있다.
ⓒ 권우성
김윤주

  
김윤주 교사가 졸업생들을 위해 준비한 졸업생 개개인의 '성장보고서'와 자신의 얼굴과 졸업생들의 이름이 새겨진 손수건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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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
  
졸업생들로부터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가 적힌 카네이션을 여러개 받은 김윤주 교사가 활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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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

 

민정이의 성장보고서에는 잘 하는 것으로 "말썽쟁이 남자애 짝꿍 삼아 조련하기"와 더불어 이런 편지 글이 적혀 있었다.

 

"가끔 문자하자, 아이들 문자 100통 쌓이기 전에는 이미 학교에 돌아가 있지 않을까 싶다. 민정이가 흘린 눈물, 세상에서 받은 상처와 두려움이 그대로 굳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돌아가야지. 사랑해, 그리고 졸업 축하해. 오리 궁둥이 예쁜 아가씨!"

 

김 교사의 마지막 인사 시간. 김 교사는 "불의를 보면 분노할 줄 알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졸업장을 다 나눠줘도 아이들과 학부모 50여 명은 돌아갈 모양새가 아니었다.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선물을 줬으니, 우리도 선물을 줄게요"라고 말했다. 승주가 6학년 4반의 1년이 담긴 동영상을 제작해 왔다. 아이들, 학부모 그리고 김 교사는 그걸 웃으며 지켜봤다. 동영상에는 유난히 "사랑해요"라는 자막이 많이 등장했다. 동영상이 끝난 뒤 이번엔 희조가 또 일어서 말했다.

 

"선생님, 우리 졸업식 노래도 안 불렀잖아요. 선생님이 예전에 가르쳐준 노래 <꿈꾸지 않으면> 같이 불러요."

 

학생들과 김 교사의 마지막 합창 시간. 지휘자와 악기 연주자는 없어도 아이들과 교사의 노랫소리는 나지막하게 퍼졌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리 알고 있네. 우리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김 교사와 아이들이 주고받은 노랫말 속에는, 우리 교육이 잃어버린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몇몇 학부모들은 가만히 이 노래를 들으며 말없이 눈을 훔쳤다.

 

  
한 학생이 김 교사에게 졸업장, 성장보고서를 받은 뒤 돌아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김윤주
  
김윤주 교사와 노래를 함께 부르던 졸업생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김윤주

 

모든 행사가 끝난 뒤 아이들은 김 교사의 가슴에 안겼다. 학생은 "꼭 돌아와야 해요"라고 교사의 등을 두드렸고, 교사는 "꼭 건강하게 자라야 돼"라고 학생의 볼을 만졌다. 포옹이 끝날 때마다 아이들은 자신의 가슴에 달려 있던 붉은색 꽃을 김 교사의 가슴과 팔에 달아줬다. 그래서 김 교사의 가슴에는 여러 송이의 꽃이 폈다. 꽃에는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6학년 4반의 졸업식은 가장 늦게 끝났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쉽게 돌아가지 못했다. 모든 이들이 떠난 텅 빈 교실. 그 때서야 김 교사는 졸업식 내내 꾹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김 교사는 지인의 품에 안겨 한동안 소리 내어 울었다.

 

  
졸업식이 끝난 뒤 김윤주 교사와 졸업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김윤주

  
김윤주 교사가 졸업생들이 모두 떠난 교실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흐느끼고 있다.
ⓒ 권우성
김윤주

 

자신의 등을 떠밀었던 교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의 반이 아닌 그 교실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김 교사의 몫이었다. 김 교사는 불을 끄고 교실문을 닫았다. 그리고 이제는 언제 돌아올 지 기약할 수 없는 교실을 등지고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봄비인지 겨울비인지 가늠할 수 없는 빗발은 더욱 거세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