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일기12] '오리농군' 덕에 풍년 들것네~

2008. 7. 5. 10:46사람 사는 세상

“삐~ 삑- 삐~ 삑- ♬♬”
봉하 들판이 요란합니다. 대통령과 주민들이 추진해온 친환경농법을 책임질 오리농군들의 합창 소리입니다. 오리들이 꽤꽥 할 줄 알았는데, 어려서 그런지 삐삐거립니다. 누가 미운 오리새끼라고 했을까요? 부화 12일 만에 옮겨졌으니 태어난 지 한 달이 안 된 예쁜 새끼오리들입니다.

그런데 어리다고 얕잡아 볼 게 아닙니다. 봉화산 사자바위에서 봉하 벌판을 내려다보면 오리농군의 왕성한 활동력을 금세 느낄 수 있습니다. 오리농군들이 휘젓고 다닌 논은 흙탕물입니다. 써레질을 해놓은 거 같습니다. 오리가 없는 옆 논의 맑은 물과 확연히 다릅니다.

‘오리수색대’ 봉하 벌판을 바꾸다

무슨 ‘일’을 하기에 논을 바꿔놨을까. 모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인기척이 나니 냅다 줄행랑을 칩니다. 부리나케 달려오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농로를 따라 한 녀석을 쫓았습니다. 100m 달리기 하듯 한참 뛰었습니다. 따라잡지 못했죠. 몸집은 작아도 빠르기가 비호같습니다. 뒤뚱거리고 걷는 오리농군을 상상했는데, 머쓱해졌습니다.

이 녀석들, 타고난 김매기 선수입니다. 머리를 물 속에 박고, 지치지 않고 입질을 합니다. 쉴 새 없는 갈퀴질에 잡풀 하나 자라기 어렵겠습니다. 풀들이 햇빛을 못 봐 죽는다고 합니다. 또 벼 밑동을 연신 쪼아대고, 먹이를 찾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오리 10마리가 사람 1명의 몫을 한다는데, ‘오리 수색대’를 만들어도 되겠습니다.

해충을 기막히게 잡아먹는데 ‘벼물바구미’는 싹쓸이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제초제, 해충제 등 농약을 2~3번은 족히 쳤을 텐데, 그때보다 더 깨끗하답니다. 오리 논의 벼 줄기는 여기저기로 뻗쳐 있습니다. ‘분얼’이라고 하는데 벼 줄기 마디에서 가지가 갈라져 나오는 것으로 분얼 수가 많아야 수확량이 늘어납니다. 오리 똥은 그대로 천연 거름이 됩니다.

“미안해, 먹이가 없단다”

오리농군의 먹성은 ‘천하장사’ 수준입니다. 무엇이든 잘 먹는 잡식성에 대식가죠. 사람이 지나가면 우르르 달려와서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입니다. 발걸음을 옮기니 5열종대로 줄지어 쫓아옵니다. 잠시 멈췄더니 오리 행렬도 서서 뭔가를 기다리는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흩어져 있던 녀석들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헤엄쳐 옵니다. 7열종대로 무리가 늘었습니다.

난감해졌습니다. 줄 게 없는데… 쫓아오던 오리들이 허탕 친 것을 알았는지 투덜거리듯 ‘삐-삐’거리며 하나 둘 돌아갑니다. 미안하더군요. 놀리려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그래도 벼는 먹질 않는다고 하네요. 주둥이 구조가 섬유질이 많은 벼를 먹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오리를 논에 풀어놓는 기간에는 최소 사료만 줍니다. 배가 고파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벌레를 잡아먹고, 풀을 뜯어먹고 열심히 일하게 되니까요. 여름내 농사를 짓고 난 농군오리는 비쩍 마릅니다. 일반오리가 2.5㎏ 안팎인 데 비해 농군오리는 1.5~2㎏에 불과해 식용으로 쓰려면 일정기간 다시 사료를 주고 키운다고 하네요.

사람이나 오리나 농사일이 고되기는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그렇다고 오리가 휴일 없이 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오는 날은 당연히 쉬고, 논에 물이 없을 때나 풀이 많이 나지 않으면 풀어놓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봉하마을 마스코트 ‘오리농군’

그동안 봉하마을에서는 AI(조류 인플루엔자) 파동 등으로 오리농법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는데요. 우여곡절 끝에 6월 13일 오리들이 입성하면서 대통령과 주민들이 두 달 넘게 준비해온 오리농법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습니다.

방역과 소독을 거쳐 전입 신고한 오리는 2,460마리. 날렵하며 체질이 강건한 카키 캄벨(Khaki Campbell) 종입니다. 현지적응 훈련을 위해 오리막사로 옮겨졌습니다. 6월 14일 오후 2시. 대통령과 마을주민,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모내기가 빨랐던 이병기씨 논에 처음으로 오리를 풀었습니다. 첫 오리농군 출정식인 셈이죠.

대통령은 "풍년들게 농사 좀 잘 지어 주라"며 오리농군들을 일터로 보냈습니다. 오리들은 논에 들어서자마자 벼 포기를 뒤집니다. 유심히 지켜보던 대통령이 “건강해 보이는데 이 녀석들이 나락 다 삐댄다”며 일을 잘 해낼까 염려하는 기색도 비칩니다. 모 성장상태에 따라 오리를 나눠 넣었는데, 6월 27일을 마지막으로 친환경오리농법 시범단지 8만 1,000㎡(2만 4,600평)에 2,460마리의 오리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귀염둥이 오리농군들은 봉하마을의 새로운 마스코트가 됐습니다. 방문객들은 만남의 광장에서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오리농군 소식과 오리농법 진척에 대해 묻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에는 오리농법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자주 올라옵니다. 봉하비서실이 농사짓는 논에 손 모내기를 했던 ‘공채1기’ 자원봉사자들의 관심은 남다릅니다. 몇몇 참가자는 시간 날 때마다 오리농군 사진을 찍어 <사람사는 세상>에 올리는데 인기가 높습니다.

노사모회관 옥상엔 ‘오리진료소’도 생겼습니다. 지난주에는 발육부진의 노란 오리와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잿빛 오리가 입원 중이었습니다. 그간 여덟 마리가 퇴원했습니다. 어느 네티즌이 손 모내기한 논의 사진을 보고 “450평이면 45마리가 있어야 하는데, 왜 49마리냐”고 따지면서 ‘오리숫자 논쟁’도 벌어졌는데요. 퇴원한 오리 네 마리를 넣어 일어난 해프닝이었습니다.


“오리 잔업 시키지 말라”

오리농법에 대한 주민들의 감회는 더욱 새롭습니다. 실수도 많았고, 고생도 했죠. 가장 힘든 일은 아침에 풀어준 오리를 저녁에 막사로 다시 불러 모으는 것. 오리들은 쉽게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들어갔다가도 한두 마리가 도망치면 나머지마저 우르르 몰려나가는 바람에 도루묵이 되곤 했죠. 사람이 오리를 모는 게 아니라 오리가 사람을 데리고 노는 형국이었다고 합니다.

방사 첫날 주민 서넛은 밤 11시까지 ‘오리와의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다 들어간 대통령은 늦도록 훼치는 소리, 호각 소리 등이 계속 되자 다음날 새벽 일찍 들판에 나왔습니다. “어제 오리들 야근했는가?” “아닙니다. 잔업했습니다.” 대통령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후배인 이기우 친환경농업추진부위원장 답변에 폭소가 터졌습니다. 대통령도 “잔업 시키지 말라”며 웃습니다.

그럼에도 이 부위원장은 잦은 ‘잔업’으로 오리들의 인심을 잃었다고 합니다. 피와 벼물바구미를 빨리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오리에게 일을 시킨 것이죠. 그래서인지 ‘탈출오리’가 많이 생겼는데 20~30마리 된답니다. 주변에서 “밥은 잘 안 주면서 매일 잔업 시키니까 도망갔지. 몇 놈은 자살했을지도 모른다”고 핀잔주자 이 부위원장은 “내년엔 매니큐어를 발라놓던가, 모자를 씌워놓던가 해야겠다”고 맞받습니다.

탈출오리는 대개 그물망을 허술하게 친 논에서 나옵니다. 비서실에선 수시로 오리농군 동태를 살피는 ‘오리감시’가 주요 일과가 되었습니다. 6월 26일 아침엔 그물망을 빠져나온 오리 다섯 마리가 발견돼 ‘탈출경로’를 봉쇄당했습니다. 오후엔 세 마리가 탈출한 논 주변을 배회하다 잡혔습니다. 오리는 워낙 재빨라 두 사람 이상이 양동작전을 펼쳐야 잡을 수 있답니다.

이병기 총무의 ‘개밥’ 일화. 방사 이튿날 밤늦도록 오리를 불러들이는데 사료가 떨어졌답니다. 급히 집으로 달려가 사료를 가져온 이 총무. 그런데 사료 모양이 좀 이상했습니다. 개사료를 잘못 가져온 것이죠. 김정호 전 비서관이 외친 한마디. “오리가 개가??” “배고프면 다 묵는다.” 달밤에 두 사람이 한참을 웃었답니다.

사람과 오리의 교감

김호문씨는 막사에 세 번이나 갇혔습니다. 문이 닫히면 밖에서만 열 수 있는 구조 때문입니다. 먹이 주러 들어갔다가 또는 오리를 가두다가 막사가 기울면서 저절로 문이 잠겨버린 것이죠. 휴대전화 없이 갇혔을 땐 사람 지나갈 때가지 기다렸다고 하네요. 공교롭게 부위원장(문성구, 이기우, 이용희)들은 모두 막사에 갇힌 경험이 있습니다.

오리 ‘귀가전쟁’은 며칠 지나자 나아졌습니다. 먹이가 도움이 됐죠. 사료를 주면, 멀리 있는 오리들까지 알아서 달려옵니다. 김호문씨는 “하루 두번 주던 걸 한번 주니까 배고파서라도 오더라”며 웃습니다. 황봉호 친환경농업추진위원장은 “사흘 고생했는데, 지금은 날 기다린 듯 모여드는 오리들이 귀엽다”고 말합니다.

주민들과 오리농군들이 가까워진 결정적 계기는 ‘스킨십’. 주인들이 매일 먹이를 주고, 돌봐주면서 금세 오리들과 친해진 것이죠. 식성 좋은 오리지만 이젠 먹이만 갖고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주인 사랑을 못 받는다고 ‘놀림’ 받는 이기우 부위원장 오리들. 다른 사람이 사료를 주자 심드렁하게 먹다가 주인이 신호를 보내자 목청을 드높이며 난립니다. 순식간에 집합을 하더군요.

아침저녁이면 되면 봉하 들판에는 주인을 반기는 오리농군들의 함성으로 가득 찹니다. 오리를 부르는 주인들의 신호도 제각각입니다. 호루라기, 박수, 막사 두들기는 소리부터 ‘구구구구’, ‘후루루루’ 등 입소리까지. 문성구, 백승택씨 오리들은 오토바이 경적이 울리자 쏜살같이 몰려듭니다. 승구봉씨 오리들은 트럭 소리만 나도 안다고 하는데, 자가용을 타고 가면 반응이 없다고 하네요.

천차순 할머니는 만생종 벼를 심어서 6월 26일에야 오리를 풀었습니다. 그동안은 ‘막사 내무반’ 생활을 했죠. 할머니가 ‘얼라 키우듯’ 정성껏 돌본 오리들. 방사 첫날 밤늦게까지 막사로 들어가질 않아 애를 먹였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 다른 신호는 영 듣질 않고, 할머니가 “가자, 가자” 해야 겨우 모였습니다.


벼를 잘 키우기 위해 오리 넣는 것

이러다보니 주인들의 오리사랑은 나날이 깊어갑니다. 나중엔 주인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오리들이 모인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될까요? 오리사랑이 일꾼오리 본연의 역할을 방해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사료를 너무 많이 주는 문제입니다. 오리가 빨리 크면 모를 짓밟게 될 수 있습니다.

사료에 쌀겨를 섞어온 이용희씨. 정성은 좋았는데 ‘과다’로 걸렸습니다. 주변에서 “오리 키워서 팔라고? 나락 키워서 팔아야지. 많이 주면 일 안한다”고 하자 “괜찮다. 먹고 나면 또 일한다”며 오리농군을 두둔합니다.

오리를 가장 잘 훈련시켰다는 승구봉씨. 오리를 가두는데 2분이면 끝납니다. ‘오리조교’라는 별명이 붙을 만합니다. 분양받은 180마리 중 잃은 오리가 없습니다. 봉하마을 최연소 농부인 그에게 비결을 물어봤습니다.

“신용을 얻어야 하죠. 정해진 시간에 먹이를 주고, 풀어주고 불러들이고. 약속을 지키는 겁니다. 모이도 세 단계로 줍니다. 힘센 놈이나 여린 놈이나 똑같이 먹을 수 있게요. 사흘 교육 잘 시키면 70일 편하게 농사짓는 겁니다. 시간 절약하고, 효과적이고. 어떻게 하루 종일 오리한테 매달리겠어요? 그래야 오리도 스트레스 안 받습니다.”

그는 오리농법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기술지도를 받으면 응용해보고 개선할 점이 없는지 궁리합니다. 사료와 물을 공급하는 장치를 자동시스템으로 바꿀 아이디어를 생각해놨고, 오리막사와 배설물처리 개선방안도 연구해 놓았습니다.

며칠 전부터는 마을식당에서 나오는 시금치, 무우, 부추, 배추 등을 썰어 사료와 섞어 먹이고 있습니다. 영양식에 사료값 절약, 부산물 처리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죠. 이런 과정은 그의 영농일지에 매일매일 기록되고 있습니다.


“오리들 농사 잘 짓네”

친환경농업추진위원회 간사인 김정호 전 비서관은 오리농법을 하면서 사람과 오리의 교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오리가 논과 벼에 적응하듯 사람도 오리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오리농법의 목표는 ‘오리관리’가 아닌 ‘벼 관리’임을 강조합니다. 벼를 잘 키우기 위해 오리를 넣는 것이니까요.

주민들은 오리농법 시범농사가 아주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승구봉씨는 “지금처럼 된다면 몇 년 후엔 우리를 가르쳤던 분들이 배우러 와야 할지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물론 그의 희망대로 나중에 봉하마을이 오리농법 견학지가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봉하 오리농법이 순항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관리의 번거로움 등을 들어 대통령 앞에서 못하겠다고 했던 이기우 부위원장은 “오리들이 농사를 잘 짓는다. 우리 모가 최고로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인근 용성마을 노재동씨는 “수확을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 봐서는 오리농법을 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오리농법이 성공하려면 봉하를 찾는 분들의 협조도 필요합니다. 주차장, 농수로 주변에는 방문객이 주는 음식, 과자를 먹고 웃자라거나 게을러진 오리들이 있답니다. 몇몇 막사엔 “오리에게 먹이주지 마십시오” 글귀까지 나붙었습니다. 대통령도 기회 있을 때마다 당부하는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답니다.

오리농군 입성으로 봉하마을은 여러 가지가 바뀌었습니다. 주민들은 ‘자연농사꾼’이란 선물을 받았고, 방문객에게는 좋은 볼거리가 생겼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봉하의 농심이, 농부의 마음이 살아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사짓는 즐거움, 자연과 교감하는 행복, 함께 하는 희망 말이죠. 그 한가운데 대통령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