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바쁘게 돌아가는 병실 한 귀퉁이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쫓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따가운 시선은 어떤 열기를 띠며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밤도 낮도 없는 격무가 계속되고 몸은 지칠대로 지쳐 그 이상의 마음을 쓸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맡은 그 병실에서 두 사람의 부상병이 치료를 마치고 전방으로 재배치되어 가게 되었다. 나는 떠나는 두 사람을 위해 며칠 복용할 약이며, 스스로 갈아줄 수 있도록 약간의 소독약과 붕대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한 사내가 뚜벅뚜벅 내 곁으로 곧은 자세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의 눈이 그의 눈과 마주쳤을 때 순간적으로 ‘아, 그 남자다’라고 느꼈다.
훤칠한 키에 얼굴이 구릿빛으로 탄 그의 얼굴은 몹시도 긴장한 듯했고, 병색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그의 모습은 안쓰러웠다.
남자는 갑자기 내 얼굴 앞에서 말했다. “동무, 밖으로 나와주시오. 나를 따라 오시오.”
내 답변도 기다리지 않고 그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 말이 하도 강해 잠시 멈칫하며 서 있던 나는 갑자기 무엇에 홀린 듯 그의 뒤를 쫓아 밖으로 나갔다.
달빛이 무척 밝은 밤이었고 창백한 그 빛은 병원 뒷마당에 초라하게 자리잡은 학생 기숙사까지 아름답게 비춰주고 있었다. 마당을 뚜벅뚜벅 걸어가던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뒤돌아서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나는 그의 눈빛이 하도 강렬해 몸을 움츠렸는데 그는 불쑥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손을 빼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그의 손의 힘은 더욱 억세게 조여왔다.
내 입에서는 “왜요? 왜?”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는 말했다. “나는 동무를 사랑하오.”
잡힌 손을 다시 빼려 하니 그는 더 힘을 주었고, 나는 “왜요? 왜요?”할 뿐이었다.
그는 한쪽 손을 호주머니에 넣더니 쪽지 하나를 꺼내며 내 손에 쥐어주고 “나는 이런 사람이오. 동무 고향은 어디요? 이름은?”하고 다급하게 물어온다. 나는 내 자신도 모르게 순순히 답하고 있었다.
“부산인데요.” “부산. 그러면 잘 되었소. 부산은 곧 해방될 테니까. 거기서 꼭 만나야 하오.”
그는 또 다른 한 장의 종이쪽지에 내 이름과 주소를 적고 있었다. 글을 적는 그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직은 병자임에는 틀림없는 사람인데....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떨리는 손을 꼭 누르고 있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그는 벌써 전방으로 떠나고 없었다. 며칠 후 그를 아는 전우에게 들은 얘기로는 그가 항일혁명 투사의 유복자이며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여 싸웠고, 6.25가 나자 인민군 18연대에 편입해 전방에 나왔다고 했다. 그랬음인지 다른 나이 또래의 군인보다 앳된 모습이 없었고 마치 강철로 만든 사람처럼 꿋꿋하게 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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