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무브온이 만난 사람] “교육의 최고 권력자는 학부모”

2007. 1. 18. 18:44정치

지난 1987년 6월, 명동성당에 모인 사람들은 허기지고 지쳐갔다. 성당을 둘러싼 녹색의 방패와 그 방패들 사이로 날아와 꽂히는 시민들의 안타까운 눈빛, 그들에게 명동성당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절벽의 가장자리였다.


그때 누군가 촛불을 들었다. 하나의 촛불은 두 개의 불빛으로, 이어 거대한 불빛의 물결을 만들었다. 그리고 대열의 맨 앞에는 검은색 머리수건을 동여맨 수녀들이 있었다. 경찰도, 시민들도, 침묵 속에 빛나는 촛불의 대열에 할 말을 잃었다. 돌아가라는 경찰의 확성기 소리도, 싸륵싸륵 촛불 타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20년 후, 당시의 기억을 가슴 한 켠에 품고 살아가는 한 수녀가 있다. 이 호노리나(본명 이애령) 수녀, 현 대전 성모여고 교장.


“현행 사립학교법, 교권 침해 전혀 없다”

 

△ 이애령 대전 성모여고 교장수녀 ⓒ2007 무브온21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의 정치웹진‘무브온21’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이 교장은 최근 종교계열의 사립학교 측이 요구하고 있는 ‘개방형 이사제 폐지를 핵심으로 한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 교장은 특히 이들 종교사학 관련 단체에 ‘한국가톨릭학교 법인연합회’가 들어 있다는 점을 들어, “그 분들의 주장이 가톨릭 전체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지금의 사학법 하에서도 교육자율권에 대한 침해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19일 여의도 국회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교단장협의회’, ‘한국가톨릭학교법인연합회’ 등 종교단체 대표자 40여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12월 21일 임시국회가 끝날 때까지 개정 사학법에 있는 ‘개방형 이사제’ 조항을 폐지하지 않으면 개방형 이사를 선임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임시 이사도 거부하고 학교 폐쇄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박종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 신경하 기독교 대한감리회 감독회장, 박홍 가톨릭학교법인연합회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 앞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사를 방문해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이 교장은 이들의 기자회견을 예로 들면서 “가톨릭 교육계 의견의 상당 부분이 박홍 신부의 의견과 반대”라고 밝혔다. 그는 “(사학법 문제와 관련해) 정진석 추기경도 고민했을 것”이라면서 “특히 정 추기경은 ‘가톨릭이 비리와 관련된 바가 없는데 이런 데 참여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톨릭계 종교사학 역시 현행 사립학교법이 교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이 교장은 “제가 종교사학의 고등학교 교장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교권침해라는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사학계가 교권에 침해를 받는다고 느낀다면, 차라리 종교교육을 실시할 경우 두 개 이상의 종교를 제시해서 학생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조항이 교육관련법에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강제적으로 종교를 선택하게 하는 것은 역으로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게 이 교장이 밝힌 이유다.


요컨데, 현재의 종교사학이 종교선택의 자유를 억압하고 특정한 종교만을 강요하는 것은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것일 뿐, 종교사학 측에서 주장하는 현행 사학법의 교권침해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이 교장은 “현행 사학법에서 감사 문제에 있어서 대학과 중·고교는 구분하고 있는데 대학은 감사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사학법은 대학에 미흡한 것이 사실이지만 중·고교 입장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은 사실이 아닌 자신들의 희망사항일 뿐”

 

△ 이애령 대전 성모여고 교장수녀 ⓒ2007 무브온21 
 
한 사람의 생각의 줄기가 굳어지는 시기를 우리는 ‘사춘기’ 혹은 ‘청소년기’라고 부른다. 따라서 올곧은 역사의식과 건강한 시민정신을 갖추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이 과정에서 학교교육, 특히 역사교육의 중요성은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다.

 

지난해 뉴라이트 재단 산하의 ‘교과서 포럼’은 일제강점기를 ‘근대화 시기’로, 4·19을 ‘학생운동’으로, 5·16을 ‘혁명’으로, 광주민중항쟁을 ‘지역감정에 기반한 것’으로 묘사해 우리 사회에 커다란 물의와 함께, 일부 보수진영의 역사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온 몸으로 보여줬다.


이에 대해 이 교장은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다행히 성모여고 역사교사들은 비판의식이 강하다”면서 “뉴라이트의 문제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며 사실 즉, 팩트가 아니라 자신들의 희망사항이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장은 이어 이러한 편향된 역사관에 의해 나타나고 있는 이른바 ‘20대의 수구보수화 현상’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20대의 보수화는 IMF 구제금융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개혁이 우리에게 갖다 준 것이 뭐냐고 느끼는 것이 원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우리 교육의 제일 큰 문제는 학력 세습”

 

그는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을 ‘공교육의 위기와 사교육의 비대화’에서 찾았다. 이 교장은 “제가 볼 때 사람들에게서 이기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교육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좋은 정책이 나와도 돈 가진 사람들은 ‘우리 애가 어떻게 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허점을 찾아낸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또 “취학 전 아이들은 조기교육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취학 전 아이들 중 일부는 조기교육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이 아이들 중 일부는 중학교에 와도 책을 못 읽는 아이들도 있다”면서 대전 성모여고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이 교장에 따르면, 대전 성모여고는 “들어오는 학생들의 반 이상이 결손가정 출신”이다. “그 아이들은 학원에 가고 싶어도 못 가고 과외 받는 아이들은 5%도 안 되는데 과외 받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학교의 방침에 불만”이라는 것이다.

 

△ 지난 해 대전 성모여고의 ‘세족식(성 만찬축일에 발을 씻어주는 행사)’에서 학생들의 발을 씻겨주는 이애령 교장수녀 ⓒ2007 대전 성모여고


이 교장은 그 이유로 “(과외 받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학교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 교장의 설명이다.


‘방과 후 수업’에 대해서도 이 교장은 “1학년 때 진로적성검사를 하는데 예를 들어 ‘탁아소’라는 말을 일부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 했다”고 일화를 소개하고 “어휘력이 떨어지니까 사고력도 떨어진 것인데 이런 아이들은 방과 후 수업을 해줘야 한다”면서 “그런데 과외를 시키는 부모들은 그게 불만”이라고 말했다.


이 교장은 “사실 학교 운영에 있어서 제일 큰 고민은 돈이 아니다”고 말했다. “제일 큰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적인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말은 “어느 대학 출신인가보다도 어떤 기술이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인데, 자녀의 미래는 ‘아버지의 경제력’과 ‘어머니의 정보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학력이 세습된다’는 것인데, “이 문제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이 교장은 토로했다.


“아버지의 실종”이라는 말로 학력세습의 본질을 정의한 이 교장은 “아이들이 아무리 커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아빠’라고 부른다”며 “그리고 부모들은 애들을 ‘장난감’으로 생각한다. 그러다보니까 애들한테는 자기 인생이 없다. 한 마디로 ‘덩치만 컸지 생각하는 것은 4살짜리 애’와 같은 것”이라고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교육 환경을 우려했다.


그는 “교육의 최고 권력자는 학부모”라고 규정했다. “‘어머니 안에 적이 있다’는 박노해 시인의 시구(詩句)도 있듯이 그들 중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바로 학력세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이 교장은 비판했다.


“노 대통령, 개인의 감정에서 좀 더 자유로와져야 한다”


이날 스스로를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라고 밝힌 이 교장은 노 대통령에 대한 솔직한 감회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교장은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존경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그 분의 삶을 보고 존경한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제가 학교장을 하다보니까 제 소신대로 결정할 수 없는 때가 분명히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라크 파병’ 등의 문제 등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대통령의 고뇌를 이해한다”는 이 교장은 “‘대연정’ 제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교장은 “부분적으로는 아쉬운 것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기 때문에 개인의 감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게 그 이유다.

 

“어떤 누군가가 대통령에 대해 공격을 했을 때 속이 상하겠지만, 좀 자유로워지셔야 한다”고 이 교장은 강조했다. 그는 “인간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일 때 그의 정신 때문에 따랐던 사람들은 힘이 빠진다”고도 했다.


“학교에서 가장 우선은 학생”

 

△ 지난 2004년 탄핵정국 당시 ‘탄핵얼짱’으로 유명해진 진정회 씨 ⓒ네이버 이미지 검색

 

지난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에서 이른바 ‘탄핵얼짱’으로 유명했던 진정회 씨를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라고 밝힌 이 교장은 “그 아이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고 소개했다.


“그 아이가 2학년 때 당시 저는 평교사였는데, 수업시간에 물었다. ‘교훈(정의와 진리와 사랑을 위하여 몸 바치는 여성)이 현대 감각에 떨어지니까 너희들 표현으로 해보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한 30분 정도 자기들끼리 토론하더니 진정회가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이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고 진 씨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이 교장은 “그 아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노사모 활동을 했다”면서 “고등학교 적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래서 대학 들어갈 때 학교에서 장학금을 대줬더니 ‘졸업 후 첫 월급은 모교에 낸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그랬다”면서 “한동안 미국에 나갔다가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산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교장이 기억하는 또 한 명의 제자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말썽쟁이”였다고 한다. “공부 이외의 모든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그 제자에 대해 이 교장은 “당시 제가 교장이었는데, 어느 날 무슨 일 때문인지 저한테 걸렸다. 그래서 교장실에서 두 시간 정도 대화를 했다. 그 아이가 펑펑 울고 저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간 것이 기억난다”고 회상했다.


당시 울고 나간 그 제자는 “대학 입학 후 4월에 찾아왔다”는 이 교장은 “그러면서 ‘꾸중을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 교장은 “그 아이는 부모님이 이혼한 아이였는데 지금은 좋은 엄마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평소 이 교장은 교사들에게 “학교에서 가장 우선은 학생”이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해 “모든 것은 학생우선으로 판단하라는 뜻”이라며 “학생을 보호하는 일에서는 내가 판단해야 하겠지만. 돈 문제와 학생에 대한 폭행 문제와 교사들의 위법문제는 교사들을 보호해주지 못한다고 교사들에게 누누이 강조한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고전(古典)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 “고전이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이 교장은 “그 결과가 요즘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한계’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 이 교장은 “발췌해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쉽게 질린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논리력을 키운다고 하는데, 그것은 대학 가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차라리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어느 광고에서 보니까, ‘논술은 글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쓰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광고를 떠나서 그 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인터뷰 말미에 이 교장은 자신이 교장직을 맡고 있는 대전 성모여고 학생들에 대해 “우리 성모여고 아이들은 제가 봤을 때는 순박한 편이다. 그리고 참 예쁘다”면서 “사랑한다”고 말했다.

 


주여 나를 받으소서

나의 모든 자유와

나의 기억과 지성과 의지와

저에게 있는 모든 것과

제가 소유한 모든 것을

받아주소서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주여,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도로 바치나이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오니,

온전히 주님의 뜻대로 주관하소서

저에게는 주님의 사랑과 은총만을 허락하소서

저는 이것으로 만족하리이다.

- 이애령 대전 성모여고 교장수녀가 애송한다는 ‘성(聖) 이냐시오 데 로욜라의 기도문’

 

 

 

by  시간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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