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 17. 18:38ㆍ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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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와 노무현, 10년의 역사를 계승할 초인을 기다리며...
고건이 정치판에서 퇴장을 했다. 한 때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고수했지만,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공직을 마감했다면 역사 속에서 깔끔한 마무리를 했을 터인데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럴 줄 알았다기보다는 어느 정도는 끝까지 갈 줄 알았다고 보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권력에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순간에 그것을 떨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고건이 훌륭한 것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지는 못할 인물이었다.
"지금 다시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고건의 퇴장으로 인해 범여권에서는 10% 이상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전무하게 되었다. 이것이 열린우리당의 향후 향방에 큰 변수가 되겠지만, 나의 관심은 조금 엉뚱한 곳에 있다. 도대체 2번 연속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에게 왜 마땅한 대통령 후보가 이리도 없는지 말이다.
혹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맞는 말이 아니다. 부동산 값 폭등으로 민심 이반이 심했던 노태우 대통령 말기에도 김영삼 후보는 건재했고, IMF 위기를 불러온 김영삼 대통령 말기에도 대통령 후보감은 신한국당에 넘쳐 났었다. 정권교체 이후에 김대중 대통령 말기에도 대통령 인기가 바닥을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기억을 잘 못해서 그렇지 DJ의 세 아들이 모두 감옥 갈 위기에 처하고, 이로 인한 민심 이반은 극에 달했었다. 그래도 여당에는 대통령 후보가 넘쳐났고, 노무현과 이인제는 국민경선을 통해서 국민의 시선을 충분히 이끌어내었다.
이제 열린우리당에 그나마 남은 후보는 김근태와 정동영이 될 것이다. 문제는 김근태와 정동영이 2002년에 국민경선을 넘어선 오픈프라이머리를 한다 한들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있느냐이다. 지지율 5%를 왔다갔다하는 후보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한들 무슨 흥행이 되겠냐는 말이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은 빅3가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손학규가 국민경선을 펼친다면 평생 한나라당을 찍어 본 일이 없는 나 같은 사람조차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물론 이명박 독주 체제가 일찌감치 성립이 되어 흥미가 반감될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마땅한 후보조차 없는 열린우리당에 비하면 풍성하기 이를 데 없다.
열린우리당의 기근과 한나라당 풍성함의 차이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결국은 후보의 문제이다. 한나라당에 절대 지지를 받고 있는 이명박과 박근혜 후보에게는 한나라당의 역사가 있다.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 이명박과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잘 맞는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핵심 지지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그들에게는 있다. 그것이 개발독재 시대의 향수이든 독재자의 딸이든 한나라당 이외의 사람에게는 선택할 권한이 없다. 선택권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있으며, 그들이 이명박과 박근혜를 지지하는데 전혀 주저함이 있을 수 없다. 이 둘이 있기에 손학규가 있고, 손학규가 지지율이 한참 아래임에도 불구하고 빅3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손학규가 한나라당 후보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 손학규는 단기필마로 대통령 후보 경선에 승리한 노무현을 예로 들지만 상황이 약간 다르다. 실제야 어떻든 손학규는 한나라당 후보로서의 정체성이 이명박과 박근혜에 비하여 불확실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정체성이 다른 후보는 한나라당 지지자들로부터 열성지지자를 추출해 낼 수 없다. 열성적인 소수마저 없다면 지지율이 열세인 후보가 뒤집을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
노무현과 이인제는 달랐다. 노무현의 정체성은 DJ를 그대로 이어받았고,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여러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이에 반해 이인제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의심받았고, 이것이 급기야는 이인제가 노무현에게 대역전을 허용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광주 경선에서 나타난 기적은 노무현이 김대중 깃발을 들고 부산에 출마했던 밑거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이에 감동을 받은 수많은 민주당원이 노무현의 열성 지지자가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노무현은 지지율 열세를 극복하고 경선 승리를 일구어 낼 수 있었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율이 한자릿수까지 추락하기도 하는 참 인기없는 대통령이다. 그래서 한때 노무현 대통령 뒤를 이을 것처럼 행동하던 정동영마저 돌아서서 가고 있다. 김근태가 노무현 대통령과 각을 세운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니 새삼 거론할 문제도 아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되고 나서 차기는 김근태 차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봤었다. DJ 이후 개혁세력의 리더 자리를 놓고 노무현과 김근태가 새로운 경쟁구도를 형성했던 것이 지난 2002년 민주당 국민 경선의 한 측면이었다. 당연히 노무현 대통령이 자리를 물러나게 되면 김근태가 이어받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 할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근태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답보상태이다.
나는 노무현의 역사 5년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노무현을 지지했던 것은 김대중의 역사 5년이 무위로 돌아갈까 봐 겁을 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라면 DJ의 역사 5년을 생동감 있게 되살려 놓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북송금 특검을 받아들여 일부 호남사람들과 DJ지지자들이 돌아서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에는 DJ의 햇볕 정책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국민의 정부 5년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노무현이 대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이회창에게 정권이 넘어갔다면 5년 내내 국민의 정부는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햇볕정책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해 본다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김대중의 5년과 노무현의 5년, 이 10년의 역사를 이어나갈 대통령 후보를 찾고 있다. 문제는 그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나는 김근태와 정동영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 김근태이다. 그가 가진 자산으로 이 10년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만 심어준다면 그는 개혁세력의 리더로서 우뚝 설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참여정부의 진가는 아마도 임기 내가 아니라 임기가 끝나고 나타나게 될 것이다. 부동산 문제가 참여정부의 인기를 바닥으로 내몰았지만, 관심 있는 사람이 본다면 부동산에서 참여정부가 해 놓은 정책이 두고두고 투기 광풍으로 미친 나라를 어떻게 정상으로 되돌려 놓게 될지 알게 될 것이다. 계약서상의 매매가와 관공서 기록상의 부동산 가격을 일치시킨 최초의 정권이 참여정부이다. 세금폭탄이라 불리는 종합부동산세가 정권이 바뀐다고 없어질 것인지 두고 보면 알 것이다. 한 번 만들기는 어려워도 돈맛을 본 지자체와 각 정부 기관이 종합부동산세를 없애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잘 모르겠다면 부동산 거래세 인하에 한나라당 소속 지자체장들이 한 행태를 기억하면 될 것이다. 국민의 주거 개념을 바꿀 국민임대아파트 단지들은 대부분 2008년도에 입주가 시작된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단기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효과가 나타나는 것들이다.
참여정부 5년은 보수세력들조차도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하지 못하는 역사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과 개헌 제안은 모두 나라의 기틀과 관련된 제안이었다. 비록 실현되지 못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많다 하더라도, 한 치 앞을 보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본 정책이었다는 것을 시일이 오래 흘러야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문득 국민의 정부 시절 추진했던 의약분업 문제가 생각이 난다. 의사들이 파업을 하고 국민이 불편해하자 아무도 나서서 옹호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특히 표를 생각하는 국회의원들이 더 그랬다. 그러나 이 제도를 대놓고 옹호했던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었다. 노무현만이 DJ의 역사를 볼 줄 알았던 것이다.
이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를 이어받을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고 본다. 김근태와 정동영은 노무현의 역사를 빼고 DJ의 역사만 이어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오산이다. 노무현이 아무리 힘이 없고 지지율이 떨어진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의 힘은 역사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10%의 고정 지지층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실제로 힘을 발휘하는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지지이다. 이들의 지지를 받지 않고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던 층은 여태까지 한 번도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세력이다. 즉, 자유총연맹이나 새마을운동본부처럼 관변단체 속에 포섭되어 있는 보수세력도 아니고, 1980년대 이후 성장한 민노당 중심의 좌파 운동세력도 아니고, 호남 향우회 중심의 지역 세력도 아니다. 애초에 열린우리당이 스탠스로 삼았던 민노당보다 오른쪽, 민주당보다 왼쪽에 위치한 합리적 개혁세력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노빠였던 셈이다. 이들의 지지를 받지 않고 이른바 범여권의 지지를 끌어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참 오산이다.
그런데 김근태도 그렇고 정동영도 그렇고 이 세력을 무시하고 있다. 이들로부터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절대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김근태와 정동영은 이 뻔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5%라도 이들로부터 지지를 끌어낸다면 이들에게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거꾸로 가고 있다.
고건이 불출마 선언을 하게 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갈등이 동인이 되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갈등이 지지율의 반등을 가져올 줄 알았는데, 결과는 전혀 반대로 나타났다. 아마도 그래서 대통령이 대통령 밟고 가서 잘되는 사람 못 봤다고 큰 소리 쳤던 것 같다.
나에게 욕심이 있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 5년을 이어줄 사람이 나타나길 바라는 것이다. 김대중에게 최고의 행운은 노무현이 있었다는 것이고, 노무현의 최대 불행은 노무현과 같은 사람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노무현은 꿋꿋하다. 내 생각에도 설사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간다 해도 노무현 대통령이 5년 동안 쳐 놓은 덫에서 엄청 헤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덫은 노무현 대통령만이 친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 스스로 다 쳐 놓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인사권의 제약을 무릅쓰고 전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제도화시켜 놓았다. 멋도 모르고 한나라당은 좋다고 엄청난 잣대로 장관들을 검증하고 낙마를 시키기도 하였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쩔 수 없이 깨끗한 사람을 장관에 임명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쳐놓은 덫이기도 하지만, 한나라당이 스스로 쳐 놓기도 한 덫이다.
이회창은 대통령이 되었다면 햇볕정책을 폐기할 수 있었지만,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손학규 누구도 햇볕정책을 없앨 수 없을 것이다. 10년의 역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의 트레이드 마크가 역사와 전통이다. 이제 개혁세력의 역사가 10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욕심을 부린다면 이 10년의 역사가 DJ와 노무현을 계승한 사람에게 이어지기 바란다. 역사란 것이 DJ 5년만 계승하고 참여정부 5년은 건너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노무현은 가끔 DJ와 각을 세우긴 했지만 진심으로 김대중을 존경하였다. 한나라당 후보로서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노무현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해야 한다. 범여권후보의 간판이 되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두 고건의 꼴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육사님의 시를 덧붙입니다.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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