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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1. 17:13나는

제적등본..
2021년 2월 마지막 날,
내가 생겨난 뿌리를 본다. 기록돼 있는 가장 오래된 연도는 1919년이다. 책에서만 보던 까마득한 102년전. 생몰연대없이 이름만 있는 외증조할아버지 김종진 할머니 조만암, 1919년생 외할아버지 김일태 할머니 채춘홍. 그 아래 엄마 외삼촌 이모, 그 아래 우리(외사촌,이종사촌), 또 그 아래 외조카들. 5대를 이어오면서 6촌까지 넓어졌다.

 

외증조할아버지, 스물한 살 때인 1939년에 혼인한 외할아버지 모두 어떤 분들이셨길래 그 시절에 혼인, 분가, 태어난 아이들 출생신고를 미루지않고 바로 했다. 면사무소가 있는 가은장터까지 때마다 신고하러 먼지 풀풀 이는 20리 길을 걸어갔을 두 젊은 외할아버지를 생각해본다.

 

6.25전쟁 전인 1949년, 보도연맹사건으로 새벽에 자다 끌려간 몇달 후 전쟁직전 경남 어느 형무소에 있다는 기별을 받고 외할머니가 면회가서 보니 얼마나 맞았는지 온몸이 퉁퉁 붓고 피투성이가 된 외할아버지를 본 게 마지막. 딱 한 장 있던 흑백사진은 그 후 죽었는지 살았는지 수십년째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원망스러워 외할머니가 찢어버렸다고 한다.ㅠ

 

혼인후에도 서당에 다녔다는 외할아버지가 혼인 이듬해 한 마을로 분가해 집(초가) 지을 때 사랑방 천장에 넣은 나무기둥에 멋진 필체로 쓴 상량문을 보며 외할아버지 없는 외가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여덟 살 때까지 살았다. 새로 짓는 이 집에서 살림 일구고 아이들 낳고 잘 살아보자고 설레는 맘으로 한 자 한 자 써내려갔을 마음을 헤아려본다. 키 크고 인물 훤하고 똑똑했다는 훗날 외가마을 어른들 말과 연결해보면 상량문은 추사 못지않은 글씨였다.

 

길고 하얀수염에 검은 갓, 흰두루마기를 입은 외증조할아버지 동생인 작은 증조할아버지께서 어쩌다 오시면 상량문이 내려다보는 사랑방에서 질부인 외할머니가 절을 하면 어린 나도 쭈삣쭈삣 서 있다가 할매 따라 절을 했다. 엄마 없는 내게 외할머니는 첨부터 할매였는데 내 나이 대여섯 살 때 외할머니 나이를 계산해보면 지금 내 나이보다 젊다.ㅠㅠ

 

부푼 꿈을 안고 지었을 집에서 10년도 못 살고 다시 돌아오지 못한 집에 남은 외할머니와 아버지 없는 어린 삼남매의 고난의 삶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80년대 후반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을 읽으며 6.25전쟁에 앞선 한국 현대사의 비극 보도연맹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험난한 세월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외할머니 살아계실 때 구술녹음해 놓지 못한게 아쉽고 아쉽다.(평생동안 육고기라곤 입에도 못 대고 생선도 비린내 덜 나는 조기만 겨우 잡숫던 외할머니, 생의 마지막 두어해 옅은 치매가 왔을 때에야 평생 입에도 안 대던 육고기를 고기인 줄도 모르고 조금 잡수셨다.)

 

내 안의 슬픔의 근원인 두 분의 혼인이후 82년이 지난 지금, 이모만 살아 계신다.
그리고 나는 고향에서 먼 울진땅에서 수구초심으로 살고 있다.

 

*신기한 건, 내 아바타를 만들었는데 보고 또 봐도 이모 젊을 때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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