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번역기' 페이스북 만든 김지명씨

2015. 6. 18. 10:38정치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이해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한 문장에 주어가 둘이거나 목적어가 없는 등 학교에서 배운 문법과 전혀 다른 화법으로 말해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하기 어렵다.

이런 와중에 인터넷에는 '박근혜 번역기'가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5일 페이스북에 개설된 이 페이지는 열 하루가 지난 16일 현재 3만 1천 명이 '좋아요'를 클릭해 보고 있고 언론사들은 앞다퉈 이 페이지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다. 누리꾼들은 '이 사람 언어영역 1등급이겠다'라거나 '청와대에서 제의오겠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 페이지가 100% 박 대통령의 발언을 번역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번역본에는 박 대통령이 즐겨 쓰는 단어와 함께 풍자까지 더해져 많은 누리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 페이지를 만든 사람은 누리꾼 추측대로 정말 언어영역 1등급일지가 궁금하여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박근혜 번역기'를 개설한 김지명씨와 약속을 잡았다. 지난 15일 압구정역 근처에서 그를 만나 '박근혜 번역기'를 만든 이유와 번역할 때 어려움 점 등과 함께 '박 대통령 발언 번역 팁'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압박? 박 대통령 그럴 분 아냐... 국민과 소통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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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번역기' 페이스북
ⓒ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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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스북 페이지 '박근혜 번역기'가 화제입니다. 3만 명 정도 좋아요를 클릭했던데 이런 반응이 올 거라 예상하셨나요?
"국민들은 소통을 원하는데 박근혜 정부는 불통이어서 불통의 수치 만큼 반응이 올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더 큰 반응이어서 조금 신기하긴 했어요."

- 누리꾼들이 '좋아요'를 누르는 이유는 뭐라 보세요?
"페이스북의 '좋아요'는 단어가 가진 본래 의미와는 달리 '공감'한다는 말이거든요. 결국 공감하니깐 누르지 않았을까요?"

- 어떤 반응이 올라오나요?
"저는 댓글을 유심히 보는 편인데 '이분 최소 오늘만 사시는 분', '관리자 몸조심하셔야 할 듯' 등등 제 신변을 걱정해주는 반응들이 조금 신기했고, 주로 박 대통령의 불통에 대한 반응들이 가장 많아요."

- '박근혜 번역기' 페이지를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지인이 페이스북에 박 대통령의 비문을 올리고 누가 해석 좀 해달라고 해서 마침 정말 할일이 없던 터라 심심해서 번역을 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페이지를 만들게 됐어요."

- 압박이 있을 수도 있단 생각을 했을 법한데
"2012년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께서 후보시절 '문재인 후보가 보호하려는 인권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만의 인권입니까? 이런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통령 비방하는 댓글 하나만 달아도, 컴퓨터 내놓으라고 폭력정치, 공포정치를 하지 않겠습니까?'란 말씀을 했어요. 저는 이 연설을 듣고 박 대통령님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어요."

-  페이스북 페이지 중 '달변가 그네'도 있는데 거기와 차이점은 뭔가요?
"저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둘 다 풍자를 담고 있다고 생각되고 차이점은 '달변가 그네' 페이지는 대통령의 화법을 패러디 하고 '박근혜 번역기'는 번역을 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일 것 같아요."

- 페이지에 '내 말을 알아듣는 나라'가 있잖아요. 아마도 박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인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패러디한 것 같아요.
"네, 패러디예요. 저 패러디 문구를 사람들이 보면서 박 대통령의 말을 알아듣는 나라로 많이 해석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해석을 하셔도 되긴 하는데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요. 사실 제가 만들 때는 '국민의 말'을 대통령이 또는 정부가 알아듣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만든 것이에요. 박 대통령의 원래 슬로건인 내 꿈을 이루어주는 나라가 되려면 먼저 국민들의 말을 알아듣고 소통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번역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어려운 것은 비수기예요(웃음). 번역기 콘텐츠가 계속 나오려면 박 대통령께서 말씀을 많이 하시고 비문이 많이 나와야 번역을 할 텐데 박 대통령이 말씀을 안 하셔서 성수기가 지나고 요즘 비수기라 번역할 말씀이 없다는 게 가장 어려운 점이네요."

- 번역할 때 참고하는 자료가 있나요?
"따로 참고하는 자료는 없어요. 주로 신문기사나 뉴스영상 그리고 청와대에 올라오는 영상등을 참고하고 있어요."

"박 대통령, 원고 볼 때와 그냥 말할 때 너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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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열린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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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하시는 일은 뭐예요?
"저는 회사에서 온라인 마케팅 일을 하고 있고 부업으로는 기독교 팟캐스트 '내가 복음이다'의 프로듀싱과 진행을 하고 있어요."

- 국어와는 관련 없는 일이네요. 누리꾼들이 언어영역 1등급일 것이라고 추측하던데 언어영역을 잘했나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학교를 다니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언어영역이 몇 등급인지는 몰라요. 그러나 학창시절을 생각해 보면 그냥 평균 이상은 했던 것 같아요."

- 지금까지 번역한 문장 중에 가장 고난이도는 어떤 문장이었나요?
"가장 까다로운 건 유체이탈 화법인데 주로 책임을 전가할 때 사용하시는 화법이더라고요. 신기한 게 꼭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말씀은 엄청 알아듣기 쉽게 말씀하세요. 결국 대통령은 최고 결정권자이고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그 입장으로 해석하려하니 그게 조금 힘든 것 같아요."

- 문법이 안 맞아서 번역하시기 어려울 것 같아요.
"다들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어렵지 않더라고요. 한 가지 번역 팁을 말씀 드리면 수학에서 인수분해 하듯이 비문에 쓰인 단어들을 인수분해하면 대충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가 유추가 돼요.(웃음)"

- 박 대통령의 발언과 번역이 얼마나 맞다고 보세요?
"재미를 위해 의도적으로 풍자한 것 말고는 한 80% 정도는 맞다고 생각해요."

- 번역할 때 어디에 중점을 두나요?
"저는 우선 공감과 소통이 첫째이고 둘째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은 제가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 때도 똑같이 적용돼요."

- 풍자를 넣는 이유가 있을까요?
"암울한 시대에 재미있기라도 해야죠. 해학과 풍자는 선조들로부터 이어온 우리나라 종특(종족 특성)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힘든 시대가 와도 버텨내고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랄까요."

- 박 대통령의 발언을 분석해보면 어때요?
"박 대통령의 말씀을 기사로 보거나 동영상을 보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말씀하시는 건가란 의구심이 들고 박 대통령의 할 말을 누군가 써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누가 써주면 문법은 맞아야 하지 않나요?
"그래서 제가 동영상을 하나 구했거든요. 원고를 보고 읽을 때와 애드리브할 때 확연히 문법에 차이가 생겨요. 원고를 보고 읽으실 때는 아주 수려하게 말씀을 잘 하시다가 갑자기 애드립을 하고 싶어지셨는지 원고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서 카메라나 청중을 보고 말씀을 하실 때는 확연히 어투가 달라지는 동영상이 있어요. 조만간 페이지에 올려드릴테니 보시면 알 수 있을 거예요."

- 만약 청와대에서 대변인이나 연설비서관으로 제의가 온다면?
"우선 죄송하지만 거절하고요. 국무총리가 지금 공석이던데 후보들 보니깐 왠지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총리후보 정도로 제의해주셨으면 해요."

- 마지막으로 박 대통령에게 번역가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세요.
"번역가는 번역을 해야 하는데 요즘 일거리가 없어서 너무 슬퍼요(웃음).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일감이 넘치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저도 바쁜 벌꿀이 되고 싶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