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싶다

2011. 1. 7. 14:48정치

묻고 싶다
(서프라이즈 / 강남 아줌마 / 2011-01-06)

 


요즘 가장 가슴 아프고, 마음 쓰이는 일은
구제역 파동으로 생매장당하는 소와 돼지뿐이다.


구제역에 관한 뉴스, 특히나 그림이 있는 TV 뉴스는 애써 외면하지만
오늘도 “‘소 저승사자가 온 듯’, 일주일째 곡기 끊은 아버지”라는 기사에
소와 사람이 동시에 안타까워 끝까지 읽기가 힘들다.

 

3년 전 조류독감으로 생매장되는 조류에 대해
‘고무다리 긁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쓴 적이 있는데,
인간에게 이용당하다 잔인하게 생매장당하는 동물에 대한 동정심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 주제였다면 지금은 분노이다.


수십 만 마리의 짐승들이 추운 땅에 산채로 매장되는데
겨우 한다는 소리가 장외 투쟁하는 야당의원들 탓이고,
대통령이란 사람은 팔자 늘어지게 과메기 쌈싸쳐 먹는 사진을 홍보하는 나라의
국민 주제에, 책임질 사람 누구냐고 묻는다면,
내가 바보일 것이다.

 

가난하면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비벼진 눈칫밥을 먹는 게 당연하고,
그럼으로써 뼛속 깊이 주제를 파악하며 굴욕적인 삶을 수용하라는 당신들은
인간의 탈 안에 괴물의 얼굴을 한 게 아닌지,
도대체 자식을 키워보기는 했는지, 묻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겠지.

 

그깟 배추값, 기름값… 껌 값도 안 되는 정도에 화내는 민심이 우습고
농민의 울부짖음도, 소상인의 한숨도,
많이 먹으면 미안하다는 가난한 아이의 울먹임도 당신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소와 돼지의 비명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의 적기를 알리는 신호로 바꿔 들리겠지만
자화자찬 일색의 신년인사와
자동차회사 사장이 괜찮다 했으니 FTA 문제없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떤 쥐 대가리에서 나오는 걸까…. 이건 묻고 싶다.

*

신년에 개각한 인사들의 면면을 보자니 ‘상분지도(嘗糞之徒)’라는 말이 떠오른다.
똥을 맛본다는 뜻의 ‘상분(嘗糞)’과 무리‘도(徒)’가 만났으니
‘부끄러움을 돌아보지 않고 마치 똥이라도 핥아 줄 듯이 아첨하는 떼거리’를 말한다.

 

이들이 가장 잘하는 일은
남들이 다 아는 일을 자기네들끼리 시치미 떼는 일이다.
지성은 흐려진 지 오래, 판단력도 남 줘버린 지 오래,
양심은 원래 있었던 흔적조차 없다.


그래서 이젠 양심 없는 시대, 선과 악이 뒤바뀐 시대임을
다들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할 짓은
권력이란 천장에 매달려 국민들에겐 관심 없이 한가롭게 발을 흔들며
자신이 아부할 대상의 똥 맛보는 것밖에 없을 것이니
이것 또한 꼭 한번 묻고 싶다.


쥐똥 맛은 과연 어떠한지….

 

*

 

밤 열두 시면 EBS에서 하는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 특강 ‘정의’를 보게 된다.

유익함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내 지적 소양과 취향상
다큐보다는 드라마 쪽이니
그 프로를 보는 것은 드라마 이상으로 재미있기 때문이고,
작년 열풍이 불었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지 않은 무식함에서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는 약은 생각이기도 하다.

 

표류한 배에서 세 사람이 나머지 한 사람을 희생시켜
자신들의 생명을 연장하려 했던 시도는
과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가치에 합당한가에서 시작된
법, 도덕, 공리주의, 불가피성, 도덕적 유죄판단의 근거 등
여러 가지 예시, 토론과 질문을 통해 논리를 전개해가는 과정에서,
강당에 빼곡하게 찬 학생들 각각의 논리적인 생각과
각자 다른 생각들과 논리를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이끌어가는 교수를
한 시간 쳐다보며 끊임없이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 전에 보고 들었던
현 국내 상황에 대한 정치 사회 뉴스와 글들은 일차원적으로 느껴지고,
마치 시장바닥의 와글와글 소음에서 빠져나와
고급 살롱에서 휴식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국내 상황과 겹쳐 생각해보고 싶지도 않고 얄팍하게 얻은 지식으로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철학의 빈곤을 탓하고 싶지도 않다.

 

자신의 안위와 권력과 이익만을 위해 하는 행위를 정치라고 우기고,
그 행위의 정당성에 대해선 한 번도 고민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떠올리면,
울컥, 구역질을 동반한 혐오감으로,
정치 포퓰리즘이 어떻고, 누가 대통령으로 적합하고… 말하는 것조차 싫고
공격하고, 주장하고 조롱하는 글조차 보기 싫다.


개개인의 잘못을 부당함과 잘못을 따지는 게 의미 없어 보이니,
이 정도면 정치 혐오증에서도 중증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또 분노하며 묻고 싶다.


정의가 없는 시대, 정의란 말조차 사치인 시대,
국가의 책임을 전적으로 국민에게 떠넘긴 듯한 불우이웃돕기 모금방송이
부당한 세금 징수하듯 느껴지는 시대,
이제 그깟 양심 정도는 팔아치우는 게 차라리 편하지 않을까… 고민해야 할 시대.

그래도… 난 또 2011년을 희망차게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

연말이면 이유 없이 마음이 넉넉해지고 훈훈해져,
부모 죽인 원수 아니면 무조건 용서가 되고,
괜히 넘치는 사랑에, 누구나 붙잡고 사랑한다… 말하고 싶고
얇은 지갑이나마 털어 여기저기 후원하고 싶은 그런 해가 아니었습니다.
해를 넘겨 이어진 분노로 괴로운 새해라,
정치인이든, 개인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이든,
이젠 애써 누군가를 용서한다거나, 화합, 이해 같은 건 안 하려 합니다.
정치적인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 분위기 맞추는 짓,
억지로 내 마음을 달래는 짓… 그거 참 소모적인 일이거든요.
그래서 편한 얼굴로 새해 인사하기가 힘들어 늦게 인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강남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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