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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서거 1주기를 한 달여 앞둔 지난 4월24일 재단의 상임운영위원들이 봉하를 찾아 대통령님 묘역에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님과 오찬을 함께 했습니다. 유시민 전 장관 등 상임운영위원들은 묘역을 참배하면서 대통령님 자서전 <운명이다>를 대통령님께 헌정했습니다.
이 자리에 이창동 감독(재단 상임운영위원 겸 문화예술위원장)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당시 이 감독은 영화 <시>의 편집 작업이 막바지일 때여서 한창 바빴을 텐데도 어렵게 시간을 냈습니다.
동행한 사람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 감독도 자신의 영화 <시>를 마무리하고 작품을 헌정하는 마음으로 묘역 앞에 섰을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감독의 영화가 잘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왜냐하면 영화제작이 한창일 때 이 감독은 급작스럽게 대통령님 서거를 겪었고, 참 힘든 마음으로 영화를 마무리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 봉하에서 이 감독은 <시> 시사회에 재단 임원들 여럿을 초대했습니다. 그를 잘 아는 분들은 이 감독이 자신의 영화 시사회에 지인들을 초대하는 게 드문 일이라고 설명해 줬습니다. 시사회에서 만난 그의 영화 <시>는 많은 걸 떠올리게 했습니다. 진한 감동, 아련한 아픔이 함께 밀려왔습니다. 이 감독이 수줍어하며 시사회에 지인들을 초대한 마음이 와 닿았습니다. 그 느낌은 관객의 몫인 만큼 설명을 생략하고자 합니다. 어쨌든 깊은 잔영이 오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느낌은 누구에게나 같았던 것일까요. 이 감독은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다시 받으며 본상인 각본상을 거머쥐었습니다.(참고로 영화 <시>의 각본은 이 감독 직접 쓴 것입니다.) 2007년 칸 영화제에서 <밀양>으로 본상인 여우주연상을 전도연에게 안긴 데 이어 3년 만에 다시 본상을 수상, 세계적인 거장임을 입증했습니다.
프랑스와의 시차는 있었지만 이 감독이 수상의 영예를 안은 날은 대통령님 서거일이었습니다. 대통령님 기일에 영광스런 상을 받은 이 감독의 소회는 어땠을까요. 수상 소식을 접한 정연주 이사 등 임원들은 “이 감독이 대통령님 기일에 대통령님께 큰 선물을 드렸다.”며 반가워했습니다.
그런 이 감독이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귀국 기자회견도 하기 전에 봉하를 찾았습니다. 칸에서의 고된 일정과 장거리 비행, 시차 때문에 피곤할 텐데도 부인과 함께 기차를 타고 진영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봉하마을에 들어왔습니다. 부부 손에는 ‘사랑합니다. 이창동 이정란’이라고 적힌 조화 바구니가 들려 있었습니다. 부부는 헌화대에 꽃을 바치고, 대통령님에게 큰 절로 참배했습니다.
취재 나온 기자들에게는 “1주기 때 왔어야 했는데 외국에 있어서 그렇지 못했다”며 “늦게나마 도리를 하려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 ‘도리’를 다하고서야 많은 기자들이 기다리는 서울로 급히 상경해 귀국 기자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은 극중 마지막 시(영화 제목이 <시>이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도 주인공이 쓴 시로 끝납니다. 언론과 인터넷에선 그 시를 대통령님과 연결 지어 보는 시각들이 있습니다.)의 내용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염두에 두고 쓴 것 아니냐고 질문했습니다.
이 감독은 “마지막 시는 미자(주인공)의 상황을 그린 것이다. 시는 미자의 과정의 결과로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고통을 깨어나야 우리 삶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그 시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관객마다 느끼는 것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특정인의 죽음으로 한정하는 것은 의미를 한정지을 수 있다. 해석은 관객의 자유다”고 밝혔습니다.
그 시는 이렇습니다.
모든 시가 그렇듯, 작품에 대한 느낌은 독자 혹은 관객의 몫입니다. 작가 혹은 감독의 손을 떠나는 순간.
이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든, <시>에서 무엇을 느끼거나 누구를 연상하거나 관객의 느낌이 그것이면 그것이 진실일 겁니다. 영화 <시>, 극장에서 꼭 만나보십시오. 감독 이창동의 맑은 영혼과 치열한 고뇌가 느껴집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