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1주기 추도식을 마치고] “사랑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추천 : 39 ㅣ 반대 : 0 ㅣ 신고 : 0 ㅣ 조회수 : 1583 ㅣ 등록일 : 2010.05.26 16: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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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발을 맞춰주고 눈높이를 맞춰주던, 어깨를 맞춰주던 동반자를 기억한다.”
5월 23일 오후 2시.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서거1주기 추도식장에 사회를 맡은 김제동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추도식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가슴속으로 김제동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파고들고 있었다.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쉽지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와 발맞춰주고 어깨를 받쳐주는 동반자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라고 말하는 김제동씨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잊지 못할 빗속의 추도식
추도식장 맨 앞줄 중앙에 권양숙 여사가 앉았고 그 옆에 한명숙 전 총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뒷줄에 안희정, 유시민, 이광재 후보 등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동지들이 앉아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 동반자를 그립니다. 어떠한 보답도 바라지 않습니다. 모든 마음들을 이곳에 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을 이은 다음 잠시 김제동씨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쩌면 그는 울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곧 차분하게 추도식을 이끌어갔다. 뒷줄 어디선가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이때였다. 비는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내린 빗물이 진흙과 섞여 추도식장 바닥은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추도식에 참석한 모두의 머리 위로 쉼 없이 비가 쏟아져 내렸다. 아무리 비옷으로 얼추 몸을 가렸다하지만 굵어진 빗줄기로 추도객들의 몸이 젖어 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한 명 쯤은 자리에서 일어남직도 하고, 또 누군가는 우산을 펼쳐들고 비를 피함직도 한 날씨였다. 그러나 추도식장을 가득 메운 이들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마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유시민 후보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부엉이바위를 바라보았던 것은. 김제동씨는 “모든 마음을 이곳에 담겠다. 사랑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고, 유시민 후보는 고개를 돌려 부엉이바위를 높이 올려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가까이 자리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얼굴 위로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유시민 후보 얼굴 위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것이 빗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희정 후보가 손을 들어 눈가로 올렸던 것도 그 즈음이었고 권양숙 여사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것도 같은 순간이었다. 그이들만이 아니었다. 추도식장을 가득 메운 사람 모두의 얼굴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구분하기 힘든 물줄기가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왜 이 자리에 모인 걸까
당일 인색하게 잡아도 봉하마을을 다녀간 추도객수는 10만이 훨씬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광장에 모인 사람들도 5만이 넘었다고 한다. 15만이라는 수치는 당일만의 수치이고 5월 23일을 전후하여 봉하를 방문한 사람들 수를 합치면 추도객수는 한층 늘어날 것이다.
서거한 대통령 1주기를 의무적으로 추도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통령을 측근에서 모셨던 사람들, 음으로 양으로 함께 했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런 저런 정치적 필요에 의해 추도식장을 찾아야하는 사람들도 ‘의무’의 영역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1주기 추도식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의무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야말로 평범한 이들이 남부여대하고 봉하를 찾아왔다. 장대비를 뚫고. 유모차에 작은 아기를 태우고 등에는 큰 아이를 업은 젊은 부부부터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부까지 공단오거리부터 빗속을 걸어서 추도식장을 찾아온 것이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 자리에 모인 것일까. 이 의문은 추도식 사회를 맡은 김제동씨에게로 이어진다. 그는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사회를 보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고 있는 상태다. 가까스로 그는 한 방송사에 고정 프로그램을 맡기로 예정돼 있는 상태로써 해당 프로그램 편성이 자꾸만 미뤄지고 있다고 한다.
눈치를 보고 적절히 처신하면 ‘감형’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반대로 처신하면 ‘괘씸죄’가 추가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또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추도식 사회를 보고 있다. 그는 왜 이 자리에 선 것일까.
박석 추모글을 함께 읽어 추도식장을 눈물바다로 만든 명계남, 문성근 두 사람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명배우’나 ‘문배우’는 2002년 노사모 활동을 통해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들이다.
참여정부 내 두 사람은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아예 방송출연이 불가능해진 것 같다. ‘정치적 퇴출’을 당한 것이다.
게다가 ‘명배우’는 대통령 서거 이후 받은 심적 타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고혈압으로 인해 오른쪽 눈의 혈관이 터져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운전도 제대로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시야가 희뿌연 상태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단다. 그들은 대통령을 만들었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도 컸다. 그럼에도 그들은 또다시 추도식 무대에 섰다.
우리는 왜 이 자리에 모인 것일까. 어쩌면 추도식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또 던졌을지 모르겠다.
봉하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발길들
추도식이 끝나고 빗발이 잦아들었다. 기차시간에 맞추기 위해, 혹은 버스표를 사기 위해 사람들은 역으로 버스정류장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추도식에 참석하고 돌아가던 사람들은 자신들 수보다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봉하마을로 들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추도식이 끝난 이후에도 봉하로 이어지는 발길은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문득, 기차에 올라타면서 혹은 기차가 출발한 뒤 귀가하던 추도객들의 머릿속으로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봉하마을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봉하마을을 나오기까지 두세 시간 사이에 벌어졌던 여러 가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봉하마을 입구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 검은 리본을 건네주었던 일, 핀으로 어르신 가슴에 리본을 달아준 사람도 있었다는 것, 어떤 사람은 신문을 나누어주었으며 어떤 이들은 비옷을 주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떡을 건네주었다는 사실들도 떠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10만 명 이상이 같은 시간대에 자그마한 봉하마을에서 북적거렸음에도 누구하나 얼굴 찌푸리지 않았다는 것, 작은 소리라도 다투는 소리가 난 적이 없다는 것, 셔틀버스에 먼저 올라타려고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인 사람도 없었으며 봉하마을 이 모퉁이 저 귀퉁이에 쓰레기더미가 있지 않았다는 것. 아,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든 아기들을 데려온 곳에서는 으레 듣게 되는 악 쓰며 우는 아기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그 순간 아이들 손을 잡고 봉하를 찾은 평범한 백성들, 그 착한 사람들, 그 어진 얼굴들이 한없이 정겹게 모두의 가슴 속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얼굴들 속에 자신의 얼굴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여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고백하게 될 지도 모른다. ‘사랑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일까.
- 에필로그 “나는 왜 이 자리에 왔을까”
나는 왜 이 자리에 온 것일까. 추도식 내내 나는 이 생각에 매여 있었다. 처음에 나는 인간 노무현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이 사무친 그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는 이즈음에서 생각을 접고 싶었다. 어쩐지 더 깊이 들어가면 무엇인가 고통스러운 진실과 마주쳐야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잊지 못할 빗속의 추도식’ 이후 나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를 추도식장으로 부른 것은 엄혹한 현실이었다.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했고, 사람사는 세상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서로 힘을 모아 싸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다들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데 불의한 세력은 더 커지고 더 강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는 마음속으로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좌절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결기와 다짐이 필요했다. 그리고 노무현과 함께 할 때 그 다짐이 단단해질 것이라고 나는 믿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피하지 말고 산 자의 몫을 다 해야 한다. 노무현과 함께 한 다짐을 단지 혼자 생각에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 ‘담벼락에 낙서라도 하고’ 6월 2일 지방선거를 위해 지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로 어머니, 아버지, 언니, 오빠, 동생을 설득하는 등 바로 내가 선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행동에 나서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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