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6. 10:47ㆍ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의 작업복·장갑·담배… 끝내 ‘눈물’ 보인 문재인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맞아 ‘추모 전시회’ 개막
(오마이뉴스 / 이경태, 권우성 / 2010-05-05)
▲ ‘할아버지…”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갤러리 루미나리에’에서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추모전시회’가 개막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1988년 4월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부산 초량동에서 촬영한 사진 앞에서 한 어린이가 “할아버지”라며 손을 뻗어 만지고 있다. ⓒ 권우성 |
▲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갤러리 루미라니에’에서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추모전시회’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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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갤러리 ‘루미나리에’에서 추모전시회가 열렸다. 1년 전 모습 그대로 재현된 덕수궁 앞 시민분향소 제단 위에 올려진 향로 안에선 향 하나가 조용히 타올랐다.
500만 명의 추모객들이 남긴 기록물도 그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덕수궁 돌담길에 붙었던 종이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해 냈던 추모 광고, 그리고 노 대통령의 영구차가 지나갈 때 시민들이 던졌던 노란 종이비행기도 전시장 천장 위에 매달렸다.
20여 명의 작가들이 남긴 추모 그림·조각·판화 등도 추모기록물과 함께 1년 전 그 감정을 고스란히 살려냈다. 관람객들은 그의 핸드프린트 모형 위에 자신의 손바닥을 대보며 ‘노무현’을 다시 느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품은 그의 인생을 고스란히 되살렸다. 손녀를 뒤에 태우고 달렸던 자전거, 농사를 짓던 노 전 대통령의 작업복과 목장갑에선 웃음이 났다. 지난 2008년 10월, ‘10·4 남북공동선언 1주년 기념 특별강연’에서 그가 남긴 메모는 오늘의 현실을 예고하는 듯해 가슴을 묵직하게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메모에서 “10·4 남북공동선언은 많은 사람들의 꿈과 정성이 담겨 있는 가치 있는 선언이고 남북경제와 미래경제의 비전이 될 수 있는 구체적·실용적 선언”이라면서도 “버림받은 선언이고 운명을 내다볼 수 없는 선언이라 기념할 상황인가”라고 당시 그가 느끼고 있던 우려를 토로했다. 그러나 그는 “의미를 되짚어서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보자”며 끝까지 고민의 화두를 놓지 않았다.
▲ 한 어린이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손바닥 모형에 자신의 손을 얹어 보고 있다. ⓒ 권우성 |
▲ ‘10.4 선언’ 1주년을 맞아 강연 준비하며 작성한 메모와 담배가 전시되어 있다. 메모에는 “많은 사람들의 꿈과 정성이 담겨 있는 가치 있는 선언-구체적 실용적. 버림받은 선언-운명을 내다볼 수 없는 선언. 기념할 상황인가? 아쉬운 기념행사. 의미를 되짚어서,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보자?” 등이 적혀 있다. ⓒ 권우성 |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손녀를 태우고 다녔던 자전거가 전시되어 있다. ⓒ 권우성 |
▲ 봉하마을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용한 삽, 낫 등 농기구와 입던 옷, 모자, 장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 권우성 |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시민분향소가 재현되어 한명숙 전 총리가 분향을 하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 뒤에 서 있던 문재인 노무현 재단 상임이사가 눈물을 닦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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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에 앞서 기자들에게 전시 작품을 설명하던 문재인 추모행사기획단장(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1년 전 모습 그대로 재현된 덕수궁 앞 시민분향소 제단 앞에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는 “시간이 지나도 추억이 더 생생해지고 더 깊어지고 그런다”며 발길을 옮겼다(문 단장은 이후 한명숙 전 총리가 이 분향소에서 향을 올릴 때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문 단장은 이어 “이번 전시회는 봉하마을까지 가기 힘든 분을 위해 마련된 행사”라며 “시민들이 그분의 체취를 느끼면서 차분하게 노 전 대통령이 남긴 화두와 과제를 다시금 되새겼으면 한다”고 전시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전시회장 입구에 세워진 추모행사 안내판의 글귀 “오월은 노무현이다”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이미 입구 밖에는 개관 30여 분 전부터 ‘바보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시민 100여 명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보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지금 그가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
▲ 한 가족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손바닥 모형에 자신의 손을 얹어 보고 있다. ⓒ 권우성 |
▲ 많은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 사진과 추모작품들을 관람하고 있다. ⓒ 권우성 |
▲ 검찰에 출두하는 굳은 표정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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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기 와야 하는지 모르겠다. 좋은 일로 온 거라면 좋겠지만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현실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작품들을 돌아보며 가슴에 남는 말은 ‘슬퍼하는 게 아니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함백주(44) 씨는 여전히 ‘바보 노무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살아계실 때 봉하마을로 내려간다고 말만 하고 가지 못했던 것이 1년 전 너무 아쉬웠다”며 “이제 노 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마음먹은 것을 실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9개월 된 아이를 안고 부인과 함께 전시회장을 찾은 오영준(39) 씨는 “노 전 대통령은 기존의 제왕적 대통령과 달리 소통하려고 했던 대통령이었다”며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나라의 정치를 크게 바꿀 수 있는 분인데 너무 일찍 가셨다, 지금 그가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허달용 작가가 그린 수목화 ‘산이 된 바보’를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작품에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몸을 던진 부엉이바위 꼭대기에 얼굴을 내놓고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오씨는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형상화한 것 같으면서도, 지금의 우리를 어떤 생각으로 보고 계신가 생각하게 한다”며 “아직 전시회장을 다 둘러보진 못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고3 수험생이었다던 송화(20) 씨는 덕수궁 분향소를 재현한 전시관을 둘러보며 눈물을 찍어냈다. 그는 “추모 전시회를 여는 자체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낀다”면서 “처음이라 그런지 사람이 예상 외로 적다, 더 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 추모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명숙 “노무현 정신 다시 기리고 확장시키는 것이 우리의 몫”
▲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추모전시회’ 개막식에서 문재인 노무현재단 상임이사, 한명숙 노무현재단 전 이사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 임채정 전 국회의장, 이해찬 전 총리,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송용오 창조한국당 대표, 김진표 전 부총리, 유시민 전 장관 등 참석자들이 테이프커팅식을 하고 있다. ⓒ 권우성 |
▲ 임채정 전 국회의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진표 전 부총리, 문재인 노무현재단 상임이사, 한명숙 전 총리,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오마이뉴스> 엄지뉴스 사진 2,313장으로 제작한 노무현 대통령 얼굴 사진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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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전시회 개관식엔 한명숙 전 총리를 비롯, 이해찬 전 총리와 문재인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친노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 임채정 전 국회의장,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송영오 창조한국당 대표 등 정치인들도 함께 자리했다.
관람객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잔인한 역사가 노 전 대통령을 가게 했지만, 노무현의 정신은 살아서 빛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너무나 평범한 말로 그분이 소개하셨던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특혜가 없는 반칙이 없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었다”며 “우리의 가슴을 울렸던 노무현의 정신을 이제 우리가 이뤄야 할 과제가 됐다”고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행동’을 강조했다.
그는 아울러,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손을 맞잡고 힘을 보태 한 걸음씩 나가 우리의 세력을 확장해야 한다”며 6·2 지방선거를 앞둔 진보세력의 연합·연대를 말했다.
“깨어있는 시민으로 모두 참여하자. 이제는 영웅을 더 기대하지 말라. 한 사람이 깨어서 자기 몫을 다 할 때 우리 사회는 변화하는 것이다. 너무나 평범한 말 같지만 오늘, 이 어두운 시대에 우리에게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오늘 1주기 추모전시회에서 노무현의 정신을 다시 기리고 그 정신을 확장시키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 생각한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 역시 “부디 우리끼리 편을 가르고 작은 차이를 확대하지 않길 바란다”며 자리에 참석한 야당 지도자를 향해 ‘단결’을 요구했다. 그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정치적 이해관계를 곁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반성을 해달라”며 “우리가 흔들리는 역사의 축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후세에 우리는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각 당 지도부는 이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정세균 대표는 “생전 소탈한 삶을 살았던 노무현 대통령은 물질적 유품보다 남겨놓으신 정신이 크고 영원히 빛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고 그의 정치를 이어받고자 하는 저희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정 대표 역시 “노무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그분이 하시다 못한 일을 우리가 어떻게 이뤄 가느냐는 것”이라며 “앞으로 추모전시회가 열릴 12일간 노무현을 이 역사에서 되살려내는 뜨거운 시민들의 걸음이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 관람객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휴대폰 사진으로 담고 있다.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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