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못다쓴 회고록 ‘성공과 좌절’

2009. 9. 22. 08:39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대통령의 못다쓴 회고록 ‘성공과 좌절’
조회수 : 4767
등록일 : 2009.09.21 15:28
노무현 대통령의 못다쓴 회고록 ‘성공과 좌절’
 

<노무현 대통령 못다쓴 회고록-성공과 좌절>이 출간됐다. 회고록은 제1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와 제2부 ‘나의 정치역정과 참여정부 5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는 노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않았던 글들로, 회고록을 쓰기 위한 목차와 대강의 구성까지만 완성하고 서거했다. ‘미완의 회고’에 실린 메모(지난 5월 20일 최종수정)들을 보면 노 대통령이 서거 직전까지 어떤 고민을 했나, 그 편린들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한국의 제3의 길 - (중략) 생산적 복지, 참여복지, 비전2030. 비전 2030은 국민에게 인사도 못하고 보수화의 바람에 묻혀버렸다. 진보언론도 적극적으로 소개하려고 하지 않았다. 목표는 2020까지 극우의 나라에서 보수의 나라로, 2030까지 중도진보의 나라로 가자는 것.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대통령 이야기-참여정부의 노선은 무엇이었는가?)

 

“무엇을 얼마나 했을까? (중략) 절반의 성공도 못되는 절반의 미완성이다. - 오히려 밀린 것도 있다. 감세정책이 그것이다. 그나마 무너지고 있다. (중략) 부동산은 비틀거리며 겨우 밀고 갔다. 이제 다 무너지고 있다.”(대통령 이야기-왜 실패했을까?)

 

“인류의 미래는 지속 가능할 것인가? 전쟁, 기아와 질병, 환경의 파괴, 자원의 고갈, 인간의 도덕적 역량은 스스로의 파멸을 막을 만큼 현명한 것일까? 당면한 과제-양극화와 빈곤의 문제. 일자리가 줄어든다-세계화, 기술혁신/고용 없는 성장. 일자리는 어디에 있는가?-중소기업, 서비스산업, 새로운 산업/신성장동력, 녹색경제, 수소경제, 스마트그리드, 똑똑한 지구, 사회적 일자리/핀란드의 신성장동력, 사회적 기업, 근로시간 단축에 관하여”(아직도 답을 찾고 있는 과제들)

봉하 단상

 

‘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 비공개 카페에 올린 글들을 모은 ‘봉하단상’에선 퇴임 후 여러 사건과 보도들에 대한 노 대통령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다양한 주제에 천착했다. 진보진영의 분열, 민주주의와 시민주권, 북한의 로켓발사,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정책, 신영철 대법관의 압력 논란, 남북 군사력 비교…. 대통령의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정책은 전문가들의 특별한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월 4일에 올린 ‘춤추는 미사일, 누구를 위한 것일까’라는 글에서 노 대통령은 “과연 북한의 로켓 하나가 정말 온 세계가 떠들 만큼 그렇게 위험한 것일까? 미국과 일본, 한국이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가운데 연료 주입에 며칠씩 걸리는 로켓 하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일까?”라고 묻는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대응 때문에 시비가 많았던 2006년 당시 청와대 상황을 회고한 뒤 다시 묻는다.

 

“정치와 언론 간에 각기 눈앞의 손익계산으로 주고받는 공방들, 과연 누구에게 무엇이 얼마나 남는 놀이가 되는 것일까?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이익을 챙기고 언론은 먹을거리를 챙길 것이다. 국민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 결과는 점점 높아지는 긴장과 적대감, 그리고 전쟁의 위험과 불안일 것이다.”

언론은 흉기다

 

노 대통령이 서거 전에 겪었을 마음고생도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절절함으로 다가온다. 4월 말에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노 대통령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간곡히 호소합니다. 저의 안마당을 돌려주세요. 안마당에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자유, 걸으면서 먼 산이라도 바라볼 수 있는 자유, 최소한의 사생활이라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라며 간곡하게 호소했다. 사저가 카메라와 사진기자들에 둘러싸여 24시간 감시받는 감옥이 된 상황에 대한 심경은 4월 12일에 쓴 ‘언론은 흉기다’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죄수가 1.5평 밖에 안 되는 감방 안을 천천히 한 발씩 내딛으며 자유를 갈망하는,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은.

 

“산다는 것이 뭘까? 안방에서 걷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뒤로 돌아서 다시 하나, 둘…. <빠삐용>이라는 영화에서 본 장면이 생각난다. 기자들 때문에 마당에도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엊그제 뒤뜰에 나갔던 모습이 조선일보 카메라에 잡혔다고 한다. 1킬로미터가 넘는 산꼭대기에서 망원카메라로 잡은 사진이란다.”


시대는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제2부 ‘나의 정치역정과 참여정부 5년’은 퇴임을 앞둔 2007년 노 대통령이 자신의 인생역정과 정치역정, 참여정부 5년의 국정운영에 대해 스스로 평가한 육성기록을 주제별로 재구성한 것이다. 퇴임 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리해 책으로 낼 계획이었으나 서거로 중단됐다. 결국 노 대통령이 자전적으로 정리한 마지막 기록이 됐다.

 

‘시대는 한 번도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에서 노 대통령은 어린 시절 가난에 대한 자의식이 강했다고 회상한다. 그 시절의 표상이었던 큰 형님, 4·19와 5·16의 기억, 울산 막노동판 경험과 고시 공부, 변호사 개업을 하고 싶었지만 판사 발령을 받게 된 사연을 떠올리며 격동의 80년대로 회고는 이어진다.

 

특별한 자각이 없었던 판사를 그만두고 법대로 살고자 했던 노 변호사는 부림사건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면서 ‘그냥 양심적으로 살면 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구나’라고 느낀다. 대학생들 변론도 하고, 데모도 하면서 조금씩 나아가다 점차 운동이 본업이 되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노동자대투쟁 당시 대우조선 이석규씨 장례식에 갔다가 구속되고 변호사 자격이 정지된 것이 국회의원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노 변호사가 국회에 진출하게 된 동기는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신분을 취득하려는 목적이 컸다. 노 의원의 초창기 의정 활동은 모두 노동현장이었다. 5공 청문회와 광주청문회를 거치면서 명성을 얻은 노 의원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그후 20년 동안 ‘노무현 정치’는 지역주의와의 싸움, 기회주의와의 싸움이라는 두 개의 큰 싸움으로 귀결된다.

 

노 대통령이 보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시각은 상반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냥 투사가 아니라 사상가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자라고 평가한다. 반면, 김영삼 대통령은 3당합당으로 민주세력의 통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철새정치로 한국정치의 흐름을 완전히 망가뜨려 놓았다고 비판한다.

 

‘바보 노무현’과 노사모에 대한 단상, 대선출마 동기, 청와대를 떠나는 홀가분한 소회, 고향으로 가는 이유를 끝으로 노 대통령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회고를 접는다.

‘구시대의 막내 노릇’과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

 

‘참여정부 5년을 말하다’에서 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공약했던 우리 사회의 과제들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는지를 되돌아보며 서두를 풀어간다. 담담한 톤으로 이어지던 회고는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열고 싶었으나 구시대의 막내, 마지막 청소부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착잡했던 심경도 내비친다. 경제 파탄론과 참여정부 실패론에 대해서는 다소 목소리를 높인다. 5년 내내 경제가 파탄났다는 이야기를 해댔지만 사실이 아니었고, 어떤 평가기준을 대도 참여정부 실패론은 반박할 수 있다고.

 

“후보 시절에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라는 책 서문에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라고 써놓은 글이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대통령이 되고자 했습니다. (중략)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것은 조금 가혹하고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싶습니다.”

한국경제 낙관론

 

노 대통령은 한국경제에 대해선 낙관적으로 진단한다. “경제는 정책을 투입해서 효과가 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참여정부가 노력한 결과는 앞으로 2~3년 동안 계속 나타날 것”이라며, 한국경제를 “기초 체력이 튼튼하고 기술 수준도 상당히 높은 축구팀”에 비유한다.

 

“경제는 정치적 목적으로 무리하게 하지 않으면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사고만 치지 않으면 됩니다. 한국은 시장의 역동성과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나라입니다. 국민의 자질이 높은 만큼 우리 경제는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가장 아쉬운 대목으로는 참여정부에서 미래의 성장과 복지를 함께 이뤄가기 위해 제시한 ‘비전 2030’이 주목받지 못한 점을 든다. 노 대통령은 ‘복지냐, 성장이냐’ 논란은 박물관에 보내야 될 이론이라며, 이미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및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은 정책으로 증명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남북정상회담과 김정일 위원장

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만난 김정일 위원장의 첫 인상은 ‘국정 전반을 소상하게 꿰고 있으며 자신의 소신과 논리를 체계적으로 표현하며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이었다.

“북쪽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가장 유연하게 느껴진 사람은 김정일 위원장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대단히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한 달 정도 앞둔 시점과 끝난 지 2주 가량 지난 후의 구술기록이 같이 실려 있어 회담 전후 노 대통령의 생각을 모두 엿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향후 NLL에서의 충돌 방지를 위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에 가장 공을 들였다고 술회한다.

 

노 대통령은 북폭설까지 나오던 북핵위기 상황을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어떻게 헤쳐나왔나를 얘기하면서 대북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의 축적’이라고 설명한다. “일관된 원칙, 대안이 있는 원칙,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축적되는 신뢰”, 이런 것이 남북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에 대한 소회

이라크 파병에 대한 소회는 남다르다. 대통령으로서 한·미간에 필요한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자이툰부대가 한·미관계에서 여러 현안을 처리할 때마다 정서적 지렛대 역할을 상당히 했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참으로 어렵고 무겁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인간 노무현’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의 고뇌가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이라크 파병 문제는,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 생각해봐도 역사의 기록에 잘못된 선택으로 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저는 대통령이 역사의 오류를 기록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즉 스스로 역사의 오류로 남을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부득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숙명 같았던 언론과의 갈등

 

노 대통령은 언론과의 갈등을 숙명이 아니겠냐고 스스로에게 답하는 듯하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두 가지로 “하나는 적어도 정치권력이나 정부권력과 언론이 유착하는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되고, 또 하나는 언론이 지난날 누려오던 특권적 지위는 더 이상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꼽았다. 지금 시기의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언론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고,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책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맞서 싸우는 것이라는 부연이다.

 

“우리 언론은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다가 그로부터 해방된 다음에는 이 권력, 저 권력과 제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조중동입니다. (중략) 그들이 권력의 대안과 결탁해서 직접 게임에 참여하는 주전선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조중동이 주전선수입니다.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습니다. (중략) ‘당신들은 선수가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현재 언론이 서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이것이 제가 묻고 싶은 것입니다.”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

탄핵, 대연정, 선거법 개정과 개헌, 가치가 실종된 대통령선거, 우리 사회의 진보와 진보세력 등으로 회고가 이어지면서 노 대통령은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을 얘기한다.

 

“5년 전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제가 공약했던 민주주의의 과제, 즉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고, 제왕적·권위적 지도자의 정치문화를 바꾸고, 낮은 권력과 법치주의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실현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분명히 진보한 것이 맞습니다. (중략) 중요한 것은 우리 정치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이걸 해결해보자고 인생을 걸고 도전했는데 그 점에 있어서는 결국 거의 원점에 돌아와 있습니다. 분열주의와 기회주의가 원점으로 돌아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입니다.”

‘사람사는 세상’ 사인을 쓰는 이유

‘한국 정치에 대한 단상’에서 노 대통령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에 대한 인식”이라며,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의 눈높이를 넘어 역사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미래는 어떻게 하면 주권자인 시민이 가장 존중받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의 존엄과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가치가 가장 상위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말이 이어진다.

 

“제가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사인을 매일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으로 대접받기 위해 각자가 시민으로서, 주권자로서 자기가 할 역할을 해나가야 된다고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못다쓴 회고록>은 ‘시민주권 사회, 사람사는 세상’으로 끝을 맺었다.


노무현의 두 번째 이야기


<성공과 좌절>을 읽다보면 지역주의와, 그리고 기회주의와의 싸움에 모든 것을 걸었던 정치인을 만날 수 있다. 현실정치에선 비주류였지만 국민들에게 사랑받았던 ‘바보 정치인’이 서있다. 남과 북의 평화와 공존을 갈구한 대통령을 만난다. 강대국에 비굴하지 않고 자주적인 생존을 추구한 지도자를 대면한다. 시대를 고민했던 대통령 노무현, 죽음마저도 시대와 함께한 인간 노무현을 만난다.

 

노무현,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갈망했던 사람사는 세상을 찾아가는 여정은 끝난 게 아니다. 그가 가고자했던 길을 더 많은 사람들이 걸어갈 것이다. 노무현의 두 번째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 긴 여정을 위한 안내서 <노무현 대통령이 못다쓴 회고록-성공과 좌절>의 일독을 권한다.

 

“사람답게 대우받는, 사람 노릇을 하는, 사람이 돈과 시장의 주인 노릇을 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 나의 실패가 여러분의 실패는 아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갈 길을 가야 한다. 여러분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성공과 좌절> 표지에서)

 

※ 노무현재단의 후원회원이 되시면 <노무현 대통령의 못다쓴 회고록-성공과 좌절>을 보내드립니다.

'사람 사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 전 대통령 생가 공개   (0) 2009.09.22
회고록 표지   (0) 2009.09.22
<노무현재단>이 드디어 9월23일 출범합니다!   (0) 2009.09.22
[보도자료] 노무현 대통령 생가 복원식 개최   (0) 2009.09.22
..  (0) 2009.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