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특별했던 경로잔치..

2009. 5. 21. 16:26관심사

경로잔치 준비가 한창이던 전날은 공교롭게도 이장님댁 생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장을 봐 온 부녀회에서는 차질이 없도록 사전준비를 한다고 너나없이 분주했었건만.. 

 

특별히 보름달처럼 넓데데한 케익 하나 장만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그날 저녁 일거리를 마친 몇몇이 모여 앉아서 작은 축하잔치를 열었다..

 

낼 모레가 환갑인 이장님댁에게 축 생신이라고 쓴 장난스런 즉석 꼬깔을 만들어 씌워 주었더니..

어쩜 그리 소녀처럼 즐거워 하시는지..ㅎㅎ

 

..............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저마다 일거리를 찾아 챙겼다..

부조를 받는 접수처에는 마을총무님과 노인회 총무님이 맡았다..

부녀회장님이 당신네 개집주변에 활짝 핀 수국을 한아름 꺾어다가 접수처를 장식해 놓았다..ㅎㅎ

 

65세 이상 된 분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기념품과 행운권을 주던 두 분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자..

"에이~이 나이에 쑥스럽게~"하시면서 표정이 어쩔쭐을 모르셨다..

 

이번 행사는 경로잔치다운 잔치를 처음 개최하는 자리였다..

변변한 공간(회관)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여느 마을처럼 대부분 5월 어느날 의례적으로 치루는 그런 경로잔치 말고..

이번엔 좀 성의있게 해 보자는게 집행부의 의견이었던 것..

그리하야~시골 작은 마을의 경로잔치 치고는 아주 거창하지만 3부 순서로 진행했다..

왜냐하면 또한 아주 특별한 순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부 개회식..2부 민요공연..3부 노래자랑 및 행운권추첨인데.

1부에서는 65세 미만인 젊은이(?)들이 모두 출동하여 어르신들에게 절을 올리고 어버이 노래를 불렀다..

커트라인에 걸린 총무님이 그러셨다..

"나두 손주손녀가 있는데 아직두 애 취급 받네~~ㅎㅎ"

 

이번 경로잔치의 특별순서였던 민요공연..!

이 공연을 준비하게 된 건 순전히 이 두 분 이장님댁과 부녀회장님 덕분이었다..

 

3년전 여성회관에서 교양강좌로 민요반을 처음 시작했을때 이 두분은 1기 동기생으로 시작했다..

수강생 대부분이 전업주부들이었지만 농삿일을 거의 도맡아 하시는 이 두분이야..

겨울 농한기와 한여름 장마철에 바짝 참석할 수 있었던 형편들이었다..

 

후배수강생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간혹 문화예술회관에서 하는 행사나 단종제때 무대에 서기도 하는 모양이드라만..

이 두분은 매양 그 타령이었는가 보다..ㅎㅎ 

왜냐하면 선천적으로 박자 감각이라도 있으면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뒤쳐지는 것도 덜 했을텐데..

나중에 이 두분의 권유로 내가 민요반에 들어갔을때에도 신입후배들에게 밀려 실력은 늘 그만그만했었으니까 말이다..ㅎㅎ

내가 이런저런 핑계로 6개월여 만에 중도하차를 하기 전까지..

이 두분은 언제나 각종 먹거리를 챙겨 반원들 걷어 먹이고~농산물 챙겨주고~수다 부리는 재미로 충만해 보였는데..ㅎㅎ

어쨌거나 가뭄에 콩나듯 다닐지언정 햇수로 3년을 넘기고 있으니 그 열정은 대단했다..

 

 

올해는 단종제때 무대에 서게 될 것 같다고 한복까지 곱게 맞추셨다며 두분의 자랑이 한창이던 4월초의 어느날..

한복 찾아 왔다고 구경오라고 달뜬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던 이장님댁과 부녀회장님..

정말 큰 맘먹고 과소비(?)를 하신 이장님댁은 그 비싼 손수가 곱게 놓여진 흰색 견본 저고리를 이리저리 보여주며..

얼마나 달뜬 목소리로 자랑을 하셨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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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단종제를 위한 연습기간은 한창 농번기여서 이 두분의 마음은 참 오락가락했었던 모양이다..

"춘옥아~오늘 날씨가 청청한데~ 고추 심을라믄 밭 정리해야 될게 한두가지 아닌데~민요반에 가야 되냐?"

용띠 동갑내기인 두 분이 전화통을 붙잡고 그러시곤 했단다..

결국 그 물빛 고운 두 분의 옷은 한복케이스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이번에 공연 좀 하셔야죠~~"

실력이야 어찌됐든 나는 두분의 열정을 알기때문에 이번 진행순서를 맡으면서 강력하게 권고했었다..

처음엔 손사래를 치시더니 왠걸~민요반 선생님에게 SOS까지 요청해서 아얘 단원들을 섭외해 오셨던 것이다..ㅎㅎ

 

두 분은 새벽같이 나오셔서 회관의 일을 정리하고 일찌감치 읍내 미장원에도 갔다 오셨다..

머리를 손질하고 화장을 곱게 하고 회관에 나타난 두 분의 모습이 순간 낯설었지만..

두분의 달뜬 기대감과 설레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ㅎㅎ

 

 

민요공연중 두 분의 차례는 없는 것을 보고 역시나 했지만..ㅎㅎ

맨 마지막 장구병창 순서에는 두 분이 선생님 양옆에 곱게 자리를 잡았다..

무대를 꾸민다고 그날 아침 부녀회장님은 빨간색 산수국이 화사하게 핀 큰 화분을 집에서 싣고 왔었는데..

평소에는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만만해 하던 분들이 어찌나 수줍어 하시는지..

어쩌면 당신들의 인생에 첫 공연무대인만큼 얼마쯤은 긴장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 같기도 하고, 언니 같기도 했던 두 분의 첫 공연..

사진을 찍는다고 오락가락 하면서 두 분을 훔쳐 보는 내 눈가가 자꾸 시큰거렸다..

 

민요반 이재옥 선생님..

취미로 배우다가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새는 줄 모른다고 이 선생님 역시 늦깍이로 시작하신 분이다..

남편이 영월읍내 고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어 영월과 인연이 되었지만 집은 춘천이며..

강사 보수 뻔할 텐데 민요반 수업때문에 2시간 반동안 출퇴근을 하는 열정을 가진 분이시다..

 

단 몇달 민요반을 다녔지만 총무를 맡았던 나에게 참 기대가 컸었다..ㅎㅎ

지난해 단종제때 무대에 서기로 하고 한복치수까지 쟀었는데 난 중도하차 했다..

그 즈음 배우던 민요가 크리스챤인 내게 그닥 은혜스럽지도 않은 것이었고..

(무당들이 공수 내린 후 사설로 부르는 민요..ㅎㅎ)

내가 왜 단종제 행사 무대에 그런 노래를 부르며 서야 하는가 싶은 종교적 회의 말이다..

결국 종교적 거룩함과 순결함을 지키기 위해 장기교육을 핑계삼아 그만두게 되었나니~아직까지 후회는 없다..ㅎㅎ

 

 

부녀회장님의 기지로 플라스틱 분홍바가지가 등장해서 제법 많은 팁이 모였지만..

공식적인 사례도 하지 못하는 한 작은 마을의 경로잔치에 기꺼이 참석해 주신 수목화 민요단원들..

그들이 펼친 한바탕 민요공연은 참 흥겨웠다..

웬 기생 불러놓고 환갑잔치 열었냐 싶었던지 길 가는 차량들까지 장사진을 쳤으니까 말이다..ㅎㅎ

 

 

서면에 사는 주용필씨..

가수 조용필의 이미테이션이라는데 민요단원이 아는 분이라고 모셔 와서 한바탕 특설무대가 이어지고..ㅎㅎ

 

이웃동네 사시는 트로트의 황후~홍이할머니는 이번에도 참석 하셔서 흥을 돋궈 주시고~

 

너나없이 어르신들이 흥에 겨웠던 시간이었다..

 

노인회장님.. 

저짝에 탬버린 들고 설치는 나를 보라~~~ㅎ

 

뒤늦게 오신 방면장님 노래 한 소절~~~

정작 내외귀빈은 많이 오지 못했다..

장릉에서 개최된 유카위 개막식과 맞물렸던 탓이다.. 

 

이미 짜여진 각본이기도 했지만 노래자랑 시상은 두 분에게 했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마을회관을 담당하시며 늘 궂은일을 마다 하지 않으시는 이우춘 할머니와 순분어머니의 막내딸 순녀씨이다..

이웃동네 문곡에 사는 순녀씨는 마을행사가 있으면 늘 어머니와 함께 참석해서 성의표시를 하고 흥을 돋궈 주고 가는 효심이..

심사위원인 두 총무님을 감동시킨 것이라고 심사평을..ㅎㅎ

 

특별히 이번에는 회관을 빌려 사무실과 숙소로 사용중인 공사업체 이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때마다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준 업체에 감사 표시를 전한 것이다..

그 이사님왈 "본사에서 아~그 동네는 뭔 잔치가 그렇게 많냐고~"했다나..

지난번 부녀회 효도관광때 함께 참석했던 이사님께서 이번에는 경로잔치라고 보고를 했던 모양이다..

 

공사때문에 전국 안가본데가 없지만 이 마을처럼 단결 잘 되고 인정 많은 고장을 못 봤다고 인삿말을 하시던데..

이 핑계~저 구실~로 빠지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만..

시골도 옛날 같지 않아서 주민들조차 크고 작은 행사에 얼굴 매번 들이밀기가 수월치 않다..

그래도 너는 너..나는 나..라는 이분법적 개인주의 개념이 아닌..

'우리동네' '우리마을'이라는 공동체개념이 아직 강한 탓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물려 받고 물려 주어야 할 아름다운 정신유산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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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집행부는 회관에서 늦게까지 깔깔거리며 뒷풀이를 했다..

주로 부녀회장님과 이장님댁의 공연 뒷담화였지만 듣는 귀가 소경인 우리들이야 뭐 알간디~

발로 장구를 고정하지 않았던 부녀회장님은 장구가 자꾸 앞으로 굴러가서 애를 먹은 이야기~

이장님댁은 가락을 놓쳐서 막장구를 쳐 댄 이야기~따위들이었다..ㅎㅎ

 

한 작은 산골마을의 특별한 경로잔치가 열렸던 날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출처 : 내 마음의 외갓집
글쓴이 : 샛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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