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봉하 방문기

2008. 6. 16. 21:07사람 사는 세상

경남 김해에서 창원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대통령이라 함)이 살고 있다. 재임시절 그의 일거수일투족이야 당연히 역사가 될 수 있겠지만, 무엇이 이미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그의 말 한 마디, 작은 몸짓까지도 역사로 만들고 있는지에 생각이 미치면, 한 편으로는 그가 자랑스럽고 다른 한 편으로는 지금의 정치현실이 몹시 안타깝기만 하다.

 

서울에서 오전 여덟 시 조금 지나 출발했으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오후 두 시가 지나서야 진영의 봉화산 아래 봉하마을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몇 차례의 방문객들의 내왕이 있었고, 그 이후에 도착한 많은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주차장에 서 있었다. 멀리 봉화산 아래 들판에서 짚단을 태우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대통령은 이후의 새참 자리에서 짚단을 태우는 연기가 너무나도 향긋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시골에서 자란 나 역시 지극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누군가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고 있는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 일부 언론에서 '봉하궁'이라고 악의적으로 비아냥대던 대통령의 사저가 있다. 중앙 가장 멀리 보이는 집이다.

 

지금은 자원봉사로 관광객을 안내하고 있는 김정호 전 대통령비서관이 자원봉사자들에게 마을에 대한 개략적인 안내와 오늘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친환경 유기농법의 일환으로 오리를 농사 도우미로 선택하여 시험농을 시작한 논이 보인다. 논두렁의 노랑색 설비는 오리가 잠 자는 곳이다. 들판 건너편 나즈막한 산이 용산이고, 용의 머리 앞 쪽으로 보이는 밝은 색깔의 제방이 부산과 목포를 잇는 경전선이 지나가는 철길이라한다. 그 너머로는 우리나라 최대의 하천형 습지인 화포천이 지난다.

 

오늘의 작업 대상인 장군차밭이다. 이제 심은 지 얼마 안 되어 주변의 잡초를 제거해줘야 뿌리를 제대로 내릴 수 있다. 장군차는 예전 삼국시대에 인도의 아샘지방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다시 구체적인 작업 안내를 하고 있는 김정호 비서관과 열심히 듣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차 밭 사이에 피어 있는 개망초. 꽃 모양이 계란후라이 닮았다고 하여 계란꽃이라고도 한다.

 

이윽고 작업이 끝나고 참을 먹는 장소에 방문하신 대통령이 계란꽃으로 꽃다발을 준비한 소녀를 환한 얼굴로 안아주고 있다.

 

우안 최영식 화백(감색 개량한복을 입은 분)의 율곡송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대통령.

 

이 작품에는 우안화백의 친필로 일명 '상록수'라고도 불리던 노래,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의 노랫말이 적혀 있다. 내가 대학 입학 후 가장 먼저 배운 노래 중 하나이다.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 김민기 -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말라고
땀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되리라

 

우리들 가진것 비록 적어도

손에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뒷편 언덕에선 아이들이 뛰노는 가운데 

 

환한 얼굴로 인사한 후, 

 

둘러 앉은 분들과 막걸리 한 잔 하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꾸밈 없이 맑은 모습으로 

 

끊이지 않는 웃음꽃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 후,

 

 

율곡송 작품 앞에서의 기념촬영

 

대통령의 즉석 제안으로 봉화산 산행을 하기로 했으나, 동행한 어린 아이들에게는 길이 조금 험한 까닭에 비교적 평이한 갈대숲 쪽의 길을 택하자는 비서관의 의견을 수용하여 산책경로를 수정하는 모습에서,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다른 이들의 의견을 곧잘 무시하는 어떤 이하고는 많이 다름을 확인하였다.

 

마을을 벗어나 숲길에 이르기 전의 논둑에 있는 자그마한 석류나무에 석류 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사저 아래 쪽에 있는 생가를 방문한 방문객들과 인사 한 후, 앞서 간 일행들이 기다린다며 뛰어가는 모습에서 그의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팬(?)들과 함께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는 모습에서 천진한 어린아이의 얼굴을 발견한다.

 

호젓한 숲 길로 일행을 안내하고 

 

근처의 지명과 연결된 산책로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는 다시 숲 길을 되돌아 나와 단체사진 촬영을 마지막으로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밤 늦게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다. 단지 전직 대통령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인사 몇 마디 들으러 오기에는 지나치게 멀고 불편한 길을 왜 수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끊이지 않고 찾아 오는 걸까. 그에게 어떤 매력이 있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게 만드는 걸까. 이미 현실정치의 전면에서 물러선 그에게 또 다른 정치권에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걸까. 쉬 판단이 서질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형태로 만나든 그는 늘 가식 없이 진솔하면서도 인간적 매력을 발산한다. 또한 거리감 없이 대할 수 있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함부로 할 수 없는 권위가 동시에 느껴진다.  

 

문득 詩로써 적들의 심장을 겨누었던 전사 김남주 님의 '대통령 하나'라는 시와 오래 전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던 추사 선생의 세한도에 씌여진 싯귀와 그 시에 얽힌 사연이 떠오른다.

 

    대통령 하나

   

    - 김남주 -

 

    미군이 잡아준 터에

    대한민국이 태어나고 마흔 몇 해

    그동안 몇 십년 동안 성조기 아래서

    대통령도 서너 개 있었다 없었다 했다

    하나는

    제 나라에 살지 못하고 남의 나라 섬으로 끌려갔다

    하나는

    제 명에 살지 못하고 총에 맞아 술잔에 코 박고 쓰러졌다

    하나는

    제 집에 살지 못하고 절간으로 쫓겨났다 
  
    대통령이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그 한 사람으로

    나 태어나고 자라고 마흔 몇 해

    나는 왜 나를 친애까지 했던 그들을

    이를테면 이아무개 박아무개 전아무개 같은 이들을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사기꾼 폭력배 정상배 매국노 반역자…

    그 따위 이름으로밖에 기억하지 못하는가

    혹시는 내 입이 워낙 더러워서 그러는 것일까

    혹시나 내 출생이 워낙 천해서 그러는 것일까 
  
    나 태어난 이 강산에서

    아름다운 이름의 대통령 하나 갖고 싶다

    나 죽어 이 강토에 묻히기 전에

    아름다움 추억의 대통령 하나 갖고 싶다

    자본가들 정치헌금이나

    주둔군의 총구에서 튀어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산과 들에서

    공장에서

    조국의 하늘 아래서

    흙 묻은 손과 땀에 젖은 노동의 손이 빚어낸

    그런 대통령 하나


 

그리고................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이 사절로 중국에 여러 차례 내왕하면서 진귀한 서책들을 구입해 절해고도 탐라에 유배되어 있는 스승 추사에게 보낸 바 있는데,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이 그림을 그렸다고 적고 있다. 내용을 대강 간추리면, 

 

"세상의 일반사람들은 권세가 있을 때는 가까이하다가도 그 권세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모른 척하는 것이 세정인데, 내가 지금 절해고도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는 처량한 신세인데도 그대는 예나 이제나 조금도 다름없이 나를 생각하며 이런 귀중한 서책을 만리 타국에서 구해 보내주니 그 마음을 어떻다 이를 것인가. 공자는 '추운 겨울철이 된 뒤에야 송백이 시들지 않고 푸른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고 하였는데 그대의 정의야말로 바로 그 '세한송백(歲寒松柏)'의 절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출처 : 산마루의 명경지수
글쓴이 : 산마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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