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가 2월 22일 8주년을 맞이합니다. 8살배기가 된 <오마이뉴스>는 올해 여러가지 연중기획 가운데 하나인 '백인보-희망을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 독자 여러분에게 찾아갑니다. '백인보-희만사'는 작지만 소중한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들, 의미있는 도전과 실험을 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 희망의 싹을 틔우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땀방울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습니다. '백인보-희만사'의 첫번째 주인공은 '변산공동체'와 교수에서 농부로 변신한 윤구병 선생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
글 : 박상규 김혜민 구자민 기자
사진 : 권우성 기자
동영상 : 문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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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부안군 변산공동체 윤구병 대표.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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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얼굴과 두꺼운 손마디를 보면, 그는 딱 농부다. 있어야 할 것이 있고, 없어야 할 것이 없으면 좋은 세상이라고 '있음과 없음'으로 세상의 진보를 논하는 그는 철학자다. 가난한 도시 사람들에게도 유기농산물을 먹이고 싶어, 원가 5000원짜리 유기농 밥을 1000원에 파는 그는 휴머니스트다. 또 노동자와 농민의 진정한 연대를 말하고 20대 대학생들에게 "영어책 덮고 짱돌을 들어라"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는 분명 투사다.
그의 이름은 윤구병이다. 1943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아홉 형제 중 막내다. 그의 첫째 형은 윤일병이고, 그의 여덟번째 형의 이름은 윤팔병이다. 부모님은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형제 중 6명은 6·25 전쟁 때 목숨을 잃었다. 상심한 아버지는 나머지 자식을 농부로 키우고 싶었다. 그게 목숨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뜻대로 그는 학교에 가지 않고 '소년 농부'로 유년을 보냈다. 친척의 제안으로 뒤늦게 학교에 들어간 그는 서울대 철학과에 들어가는 '괴력'을 보였다. 졸업 후에는 <뿌리 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을 지냈고, 충북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어린이를 위한 책 <개똥이 그림책> 등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6년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전북 부안 변산면 운산리로 내려갔다. 농부가 된 그는 '변산공동체'를 일궜다. 남들은 이상한 눈으로 봤지만 그는 행복했다. 또 최근에는 재단법인 민족의학연구원을 설립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유기농식당 '문턱없는 밥집'을 서울 서교동에 열었다. 역시 가난한 기초생활수급자 자녀들만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가 오는 3월 문을 연다. 역시 무상교육이다.
과거엔 '걸어다니는 병실'... 귀농하고 병원 가본 적 없어
소년 농부에서 철학교수로, 그리고 다시 농부로의 귀환. 윤구병은 왜 이런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그가 추구하는 것, 그리고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의 말을 듣고 싶었다. 한 쪽에선 '절망'이란 단어가 쉽게 들리고, 또다른 쪽에서는 '오렌지'와 '어륀지'의 차이를 논하는 세상이라 더욱 그랬다.
지난 15일 <오마이뉴스> 취재진 5명은 전북 부안 변산공동체로 향했다. 그 곳에 2박 3일을 머물며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일하고 밥을 먹었다. 그래야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윤구병 선생과는 16일 밤 공동체마을 손님방에서 마주 앉았다. 우리 사이에는 막걸리 한 박스가 놓여졌다. 그리고 삶은 꼬막과 유기농 배추김치가 안주로 올라왔다. 이른바 '막걸리 인터뷰'였다.
쓰다보니 길어졌다. 그러나 뒤의 인터뷰는 더 길다. 감히 일독을 권하며,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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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전북 부안군 변산공동체 윤구병 선생이 대안학교 기숙사 공사에 사용할 돌을 나르고 있다. (오른쪽) 16일 밤 변산공동체 손님방에서 오마이뉴스 기자들과 마주앉은 윤구병 선생앞에 막걸리와 함게 삶은 꼬막과 유기농 배추김치가 안주로 올라왔다. |
ⓒ 박상규/김혜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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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365일 중 360일 막걸리 마신다고 들었다. 왜 그렇게 좋아하나.
"땀 흘리면서 일하다 보니까, (막걸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게 들어가야 힘도 나고 일이 잘 된다. 일종의 마취제다(웃음)."
- 오늘처럼 막걸리 마시면서 인터뷰 해본 적은 있나.
"내가 누군가와 이야기 나눌 때는 늘 술이 있었다."
- 1년에 막걸리를 몇 병 정도 마시는 것 같나?
"헤아릴 수 없다. 하루에 5병 마실 때도 있고, 없을 때는 그냥 참기도 한다."
- 건강은 어떤가.
"올해 만 65세다. 계속 대학에 있었으면 올해 정년퇴직이다. 과거에 나는 걸어 다니는 병실이었다. 갑상선·당뇨·비염 등을 앓았다. 귀농 이후 평소 먹던 음식의 양을 3분의 1로 줄이고, 씹는 건 5배 늘렸다. 그렇게 하니까 병이 스스로 낫더라. 귀농 13년째인데, 그동안 병원 가본 적이 없다."
잘 웃는 윤구병도 화가 난다 "농사꾼 주제에...?"
- 선생은 어린 시절 농사를 지었고, 대학에서는 철학도였다. 또 대학교수를 했고, 다시 농부로 살며 변산공동체를 일궜다. 그동안 어린이책을 여러 권 냈고, 곧 의학책도 나온다. 선생이 삶을 통해 일관되게 추진하는 건 도대체 뭔가.
"내가 살아온 세상, 또 지금의 세상이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우린 이런저런 이유로 험한 세상에서 살았다. 우리 뒤에 태어난 사람들이 살아갈 세상은, 우리가 살아온 세상보다 훨씬 좋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고 나쁜 세상일까. 간단하다. 있어야 할 것이 있고, 없어야 할 것이 없으면 좋은 세상이다. 반대로 없어야 할 것이 있거나,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나쁜 세상이다. 그런데 우리 사는 세상에 없을 것이 있고,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만들어야 하고, 없어야 할 것이 있으면 없애야 한다.
나쁜 세상에서 잘 사는 사람들에겐, 나쁜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그리고 이들은 없어야 할 것을 없애는 사람을 파괴자라고 부른다. 또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창조적인 생각을 하고 무엇을 만들어내자고 하면, 기존 제도를 전복하려는 무모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경계하고 따돌린다. 반대로 기성 질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가장 모범적인 사람으로 여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쁜 세상은 계속 지속되고,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열망은 꺾이게 된다. 우리는 비겁하고 힘이 약해서 체제 순응적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아이들에게조차 그렇게 살게 해선 안 된다. 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 데 조그마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렇지 못한 시간들이 많아서 마음이 씁쓸하다."
- 선생은 없어야 할 것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 삶을 바꿨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따돌림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걸걸하고 웃음이 호탕한 윤구병. 그는 이 질문을 받고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에게도 상처는 많은 듯 했다.
"있었다. 당연하다.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있을 것이다. 왜냐면 사실 (지금의 내 삶은) 현 세상에는 위험한 것이다. 기존 질서를 자연스런 것으로 보고 더 이상 나은 질서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 세상에는 없앨 것이 많다는 생각 자체가 불온한 것일 테니까. 기존 질서에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보는 건 당연하다."
- 그런 과정에서 상처도 많이 받은 것 같다.
"상처도 있었지만… 그건 크지 않다. 가끔 화가 날 때도 있다. 한 예로, 내가 민족의학연구원을 연 건 사람들 건강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농사꾼 주제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며 내가 딴 마음을 먹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내가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여러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화가 난다."
"농부 된 게 신기하다고? 당신들의 질문이 거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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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산공동체 주민들이 오전 작업을 마친 뒤 점심식사를 위해 공동체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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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변산으로 내려와 농부가 됐다. 우리 대학생들이 봤을 땐 신기할 뿐이다. 특별한 계기는 무엇인가? (김혜민 인턴기자가 물었다.)
그 동안 윤 선생은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물음을 뺄 수는 없었다. 지겨울 법도 한데, 윤 선생은 눈을 반짝이며 차분하게 말했다. 인터뷰 질문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해 대답했다.
"대학생이라고? 몇학년? 자, 생각을 달리 한 번 해보자. 여러분들은 안정된 직장과 삶을 말했는데, 실제로 대학교수가 정말 안정적일까? 대도시 중산층의 삶, 그리고 지금의 세계체제가 정말 안정적일까?
실제로 지난 수십년간 인류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믿고, 미래가 예측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인류의 상황은) 지난 100년, 50년 사이에 상황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수십만 년 동안 지구에는 쓰레기가 없었다. 생체에너지를 이용해서 살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생체에너지는 순환가능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쓰레기가 없다.
사람 힘으로 안 되면 말이나 소·낙타를 이용했다. 그런데 200년 사이에 물질에너지인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삶이 시작됐다. 도시의 삶은 90% 이상이 물질에너지에 의존한다. 그런데 물질에너지는 수렴에너지가 아니다. 석유·석탄 태우고, 우라늄 폭파시키는 파괴에너지다. 이것들이 하늘·수질·땅을 오염시킨다.
조상들이 준 맑은 하늘, 깨끗한 물과 땅을 지난 200년 동안 모두 더럽히면서 살아왔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깨끗한 자연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 우리 때 다 말아먹겠다는 결심인 것 같다. 이건 안 된다. 물질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은 환상이다. 국제관계와 고갈에 따라서 교란이 올 수 있다. 도시에 전력이 끊기면 일주일도 못 버틴다.
그러면 전부 흩어지게 된다. 누군가는 생체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을 전수받고 익혀놔야 한다. 변산공동체가 그런 곳이다. 이런 곳이 자꾸 늘어나야 한다. 그래서 내가 택한 삶이 가장 안정적인 삶이다. 현대 교육 체계가 물질중심인데, 그것이 사회와 개인의 삶을 안정시키는 게 아니다.
실제로 많은 생명체는 생체보시를 하면서 어울려서 살 길을 찾는데, 인간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다른 생명체와 함께 사는 길을 찾지 않았다. 물질에너지 공급이 끊기면 일주일도 견딜 수 없는 삶을 안정적인 것으로 보고, 다른 생명체와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나는 훨씬 안정된 길을 찾았다. 당신들의 질문이 거꾸로 된 것이다."
- 생명과 환경을 중시하는 것 같다. 경부운하에 대한 논란이 큰데, 걱정이 많겠다.
"다른 생명체하고 상생할 생각은 없고, 사람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게 경부운하다. 우리 민족은 강산을 하나의 생명체로 봤다. 그래서 산 하나 물 하나 건드리는 걸 조심스러워 했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그런 우리의 방식을 자신들에게 협력하지 않는 삶의 기운으로 봤다. 그래서 혈맥을 끊기 위해 몰래 쇠말뚝 몇 군데 박지 않았나.
그런데, 이젠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인위적으로 공개된 상황에서 (혈맥을) 죄 끊어놓겠다고 한다. 물길도 끊고, 산줄기도 끊고…. 살아있는 국토의 관절을 끊고 손발을 자르려 하는데, 이걸 개발이라고 부른다. 너무 놀라운 생각이다. 그건 국토를 죽이는 길이고, 국토에서 사는 생명체를 죽이는 길이다. 용납해서는 안 된다."
"컨닝이 나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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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 변산공동체 마을.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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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변산공동체 이야기 좀 해보자. 공동체가 13년째 이어졌는데, 성과는 있나.
"거미나 벌은 부모님한테 집짓는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지을 수 있다. 스스로 본능으로 집을 짓는다. 또 들쥐나 길섶의 강아지풀도 모두 제 앞가림을 한다. 그러나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집은 물론 옷감도 못 만들고, 곡식을 기를 수 없다. 배워야 살아남는다. 개체의 유지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건 교육을 통해서 이뤄진다.
사람은 모여서 살아가는 생명체다. 안경·신발·미용…, 스스로 못하지 않나. 인간은 서로 돕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생명체다. 더불어 사는 힘을 길러야 한다. 두 개의 목표만 달성하면 교육은 끝이다. 스스로 앞가림 할 수 있고 더불어 살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게 그것이다."
- 변산공동체가 더불어 사는 길을 찾았다는 말인가.
"그렇다. 여러분들 컨닝해봤나? 유명한 이야기 하나 하겠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에 아메리카에 호피인디언이 있었다. 백인들이 이들을 보호구역에 가둬두고 근대 교육을 시키겠다고 덤벼들었다. 백인선생들이 교실의 똑같은 책걸상에 호피인디언을 앉히고 시험을 보게 했다. 백인들은 '절대로 옆 사람것 보지 말고, 보여주지 말고, 서로 의존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는 건 부도덕한 짓이라는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여러분도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이게 호피인디언에게는 안 통했다. 시험 시간에 우르르 서로 보여주고 토의하고 난리가 났다. 백인들은 왜 그러냐고 야단을 쳤다. 호피인디언들이 답했다.
'우리 조상들은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늘 같이 모여 상의해 최선의 해답을 찾으라고 했다. 당신들이 시험에 집착을 하는 건 이게 중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우린 중요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서로 의논해서 최선을 답을 찾으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아는데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모르는데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건 살 길을 찾지 않겠다는 말이다. 알면 가르쳐 주고 나눠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들은 당신네들이 '아는데도 가르쳐 주지 말라, 모르는데도 묻지 말라'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도덕적으로 맞다고 보지 않는다.'
이 말처럼 우리가 살 길을 찾으려면 더불어 살아야 한다. '이게 더불어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냐'고 물을 줄 알아야 한다. 컨닝이 나쁘다고 하는데, 컨닝을 나쁜 제도로 만든 사람들이 나쁜 것이다. 왜 컨닝을 하게 만드나. 모르면 서로 의논해서 최선의 답을 함께 찾는 그런 교육을 해야 한다. 그렇게 대들어야 한다. 변산공동체는 더불어 살고 있다."
- 처음 공동체 열었을 때 뭐가 가장 힘들었나.
"그동안 스스로 앞가림하는 걸 전혀 못해봤다. 언제 씨 뿌리고, 언제 김을 매야 하는지 하나도 몰랐다. 우리 마음대로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씨뿌리는 시기 놓치면 싹이 안 나고, 김매는 시기 놓치면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이 곳 마을 공동체 사람들에게 농사일을 물어봤다. 내가 좋아하는 풍천 할머니가 있는데, 그 분이 그러더라. 여기는 감꽃 필 때 검정콩 심고, 감꽃 질 때 메주콩 심는다고. 감꽃은 해마다 피고 지는 시기가 다르다. 그러니 풍천 할머니의 말이 얼마나 과학적인가. 공동체 어른들이 우리 앞가림을 가르쳐 줬다. 마을 공동체가 그래서 소중하다."
'도시 부적응자'의 공동체 적응... 역시 사람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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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산공동체 사람들이 집 지을 때 사용할 나무를 다듬고 있다. |
ⓒ 박상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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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내에서의 어려운 문제는 뭔가.
"여긴 종교·이념 공동체가 아닌 생활공동체다. 굉장히 느슨한 공동체다.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도시에서 적응 못해 들어온 사람들인데, 여기라고 적응이 쉽겠나. 예전에 우리 공동체에 수녀님들이 찾아와 함께 지낸 적이 있다. 내가 그분들에게 물었다. 10년 동안 예비수녀 과정 지나고 종선서원을 하면 몇 명이나 남느냐고. 그랬더니 10명 중 2~3명이 남는다더라.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역시 사람관계 때문이라더라.
우리 공동체는 개인 공간이 없다. 여럿이 최소한 1년 이상 살아야 한다. 그 후에 독립이 가능하다. 함께 살다보면 별의별 사람이 다 있을 것이다. 밤에 이를 가는 사람, 코를 고는 사람…. 이런 사람들과 24시간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겪어봐야 한다.
수녀원은 개인적인 독립공간이 주어지기도 한다더라.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이란 '빽'과 사랑으로 무장돼 있다. 우리 공동체? 하나님 빽도 없고 사랑으로 무장된 사람도 없다. 도시에서는 등 돌리면 돌아갈 자기 집 있고, 직장에서는 퇴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긴 개인 공간이 없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그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죄를 덜 짓고 사는 사람들이다. 착한 사람들이니까 남는 것이다. 공동생활 1년 지나고 나면 독립하고 싶어 하는데, 자기 삶의 시간을 자기가 통제하고 싶어서다. 인간관계의 문제, 역시 가장 어려운 일이다."
- 그동안 공동체에 왔다가 떠난 사람은 얼마나 되나.
"물론 손님처럼 몇 주 혹은 며칠 머물다 떠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1년 이상 있던 사람들은 거의 근처에 포진해 있다. 도시로 다시 안 간다. 9시 출근해 6시에 퇴근하고, 남의 밥 먹기 위해 싫은 일 해야 하는 통제 속의 삶을 끔찍해 한다. 자기 삶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는 것이다."
- 처음에 온 사람들의 태도는 어떤가. 적응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처음엔 불만이 많다. 기존의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오늘은 고추 심자, 마늘 심자'하면 속으로 '꼭 오늘 해야 돼?'하며 불만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건 자연이 사람의 입을 빌어서 하는 말이란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 공동체에 들어오고자 하면 다 받아주나. 면접 같은 건 없나.
"면접은 물론 조건도 없다. 물론 처음 3박 4일 함께 지내는 게 원칙이고, 더 있고 싶으면 그러라고 한다."
- 범죄자나 탈옥한 사람이 와도 받아주나.
"여긴 과거를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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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구병 선생이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집 마당에 앉아 마을을 방문한 지인들과 오마이뉴스 기자들에게 식혜와 곳감을 대접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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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5년간은 적자... 지금은 자급자족 체계 마련돼"
- 공동체의 땅은 어떻게 구입하고 관리하나.
"처음엔 내 퇴금직과 책 판매 인세로 구입했다. 지금 공동체 식구들이 일하는 땅은 여러 가지 형태다. 기존 농촌 노인들의 땅을 빌리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200평에 쌀 한 가마니를 준다. 독립가구에게 공동체 땅 일부를 내주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농산물의 8할은 본인이 갖고, 2할은 공동체 신협기금으로 들어간다."
- 돈 관리는 어떻게 하나?
"이런 것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공동체식당 안에 돈을 두는 곳이 있다. 필요한 사람이 그걸 꺼내 쓰고, 어디에 썼다고 기록으로 남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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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산공동체 주민들의 소박한 밥상.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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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곳에선 유기농산물만 먹는다. 그래도 가끔 라면이 먹고 싶고 그럴 텐데.
"솔직히 그게 제일 불편한 것 중 하나다. '불량식품'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에 따라서 콜라도 피자도 먹고 싶을 것이다. 누구도 말리지 않지만, 돈 가져다가 라면 사먹었다고 하면 창피하지 않나(웃음). 그래서 자기 스스로 통제를 하는 것 같다."
- 공동체 재산은 적자인가 흑자인가.
"처음 5년은 농사를 지을 줄 모르니까 적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급자족 체제가 마련됐다."
- 변산공동체는 안정적으로 13년 동안 유지됐다. 비결이 있나.
"변산은 땅이 좋다. 바다가 있고, 들판이 있고, 산이 있다. 풍요로운 곳이다. 처음 여기 왔을 때 주민들에게 '흉년이 들면 뭐 먹고 살았냐'고 하니까 '갯벌에서 낙지 잡아먹고 살았다'더라(웃음). 몸만 제대로 놀리면 흉년도 견딜 수 있는 곳이다."
- 겸손한 말인 것 같다. 그래도 뭔가가 철학과 원칙의 힘이 있지 않았겠나.
"그런 거 없다. 정말 땅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 여긴 농사를 1년에 두세 번 지을 수 있다."
"가난한 동네에도 '웰빙' 바람이 불어야 한다"
- 기존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마을에 계시던 분들도 처음엔 다 유기농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이 없어 일을 못하니 농약을 쓰는 것이다. 주민들이 우릴 처음 봤을 때, 캠핑 온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일이 서툴기 짝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계속 성실히 일하고 마을잔치가 있으면 심부름도 하고 하니까, '건달은 아니네' 하며 인정한다. 그렇다고 아직 완전한 화학적 결합을 한 것은 아니다."
- 도시 사람들은 유기농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유기농산물은 부유층이 주로 이용하고 있는데.
"'웰빙' 바람이 잘 사는 동네만 분다. 도시 사람들 중에서는 하층의 막노동 하는 사람들, 험한 일 하는 사람들이 건강이 안 좋다. 그런데 그들은 돈이 없어서 유기농 못 사먹는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유기농산물을 나눠먹기 위해 '문턱없는 밥집'을 열었다. 가난한 동네에서도 웰빙 바람이 불어야 한다.
도시의 가장 어려운 사람하고, 농촌에서 힘겹게 농사짓는 유기농가하고 탄탄한 연대를 열어보자고 그 식당을 열었는데, 자꾸 확산돼야 한다. 없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의 사정을 잘 안다. 그렇게 없는 사람들끼리 연대해야 참된 연대다.
도시의 노동자들이 파업기금 산더미처럼 쌓아놓아도 소용없다. 도시에서는 돈 없으면 죽는다. 한국노총이 자본가와 결합했다는 이야기 들리는데, 지금도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이런 요상한 이야기도 생계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나는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답게 살 수 없다면 끝까지 싸워라. 우리가 쌀 대줄 수 있다. 정 못 살겠으면 우리랑 농사짓자. 우리가 뒤에 있다. 이런 게 돼 있으면 훨씬 더 원칙을 갖고 건강하게 싸울 수 있다. 이게 진정한 도농연대고, 노동자-농민의 결속이다."
변산공동체에서도 영어교육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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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낮 올 3월 개교를 앞둔 전북 부안군 변산공동체 대안학교(위 사진) 주변에서 기숙사를 짓기 위해 공동체 주민들이 나무를 다듬고 흙벽돌을 직접 찍어내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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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3월이면 새로 학교를 여는데, 어떻게 운영할 생각인가.
"기초생활수급자 집안에서 중1부터 고3까지 학년마다 5명씩 뽑아 무상교육을 할 생각이다. 오전에는 철학·영어·수학·인문학·예술 등을 공부하고 오후에는 텃밭가꾸기·목공예 등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것들을 배운다. 중산층 이상의 학생들이 다니고 싶으면… 가출을 해서 오는 방법이 있다(웃음)."
- 최근 사회에서 교육만큼 뜨거운 화두가 없었다. 느낌이 어땠나?
"과연 이게 맞나 싶다. '조기 교육' '영재 교육' 등 온갖 이름으로 아이들을 학대한다. 적어도 취학 전까지는 아이들이 춤추고 뛰어놀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하게 둬야 한다. 많은 부모들에게 과거 시골에서 놀다가 밥 때를 놓친 기억이 있냐고 물어보면 다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가 참 행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아는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은 다 방에 가둬두고 영어를 가르치고, 각종 학원 교육을 시킨다. 왜 사랑의 이름으로 아이를 학대하나.
맘껏 뛰어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산과 들에서 살면 얼마나 행복하겠나. 여기 아이들은 자기 삶의 시간을 자기가 통제하는 걸 어린 시절부터 배운다."
- 영어 몰입 교육이니 하면서 홍역을 치르기도 했는데.
"만약 (이명박 당선인이) 그런 생각이라면 외교력 발휘하고 국민들 설득해서 그냥 미국의 제 51번째 주로 들어가자. 미국의 삶의 방식·경제체제·가치관이 우리의 살 길을 열어준다면 미국에 편입하지, 뭐 하러 독립 국가를 유지하나."
- 변산공동체에서도 아이들에게 영어 가르치나.
"한다.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도시와 다르다. (영어가) 경쟁의 도구로 사용되면 재난이다. 서로 돕는 상생의 수단으로 봐야 한다. 영어 교육은 필요하지만 모두가 배울 필요는 없다. 꼭 배워야 할 사람이 징검다리 노릇을 해주면 된다."
"끝까지 싸워라, 그 뒤엔 우리가 있다"
- 지난 대선 즈음, 그리고 대선 후에 진보진영에서는 '절망'이란 표현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대선에서 누가 지고 이기는 건 부수적인 문제다. 진보와 보수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자. 진보가 좋을 때가 있고, 보수가 좋을 때가 있다. 100% '꼴통' 보수가 (집권해야) 좋은 세상도 있다. 있을 것은 다 있고 없을 것이 하나도 없는 이상적인 세상에서는 변화하면 안 되지 않나. 여기선 꼴통 보수가 제일 좋은 것이다.
그런데 있을 것은 하나도 없고 없어야 할 것 투성이면 전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혁명을 하자는 진보가 최고의 가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없을 것이 많고 있을 것이 아직 적은 사회이기 때문에 진보의 가치가 중요하다. 진보는 무조건 옳고 보수는 나쁘다고 보지 말자.
미래는 아직 모른다. 새 대통령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겁먹고 있는 것 같다. 당선인은 어렵게 살았고 몸으로 깨우쳤다고 말한다. 그의 주변에는 아주 보수적인 사람도 있고, 진보에 앞장섰던 사람도 있다. 우선 지켜보자. 다만 대운하, 그 일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
- 그래도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나.
"살 길이 없으면 죽어야 한다. 죽을 각오로 해야 한다. 사람이 바뀌는 것은 힘들지만, 운동은 움직이는 것 아닌가. 고착되고 바뀔 수 없다고 하면 운동은 중지된다. 거기서 절망이 생긴다. 제 앞가림을 하면서 타인과 함께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그걸 앞당기기 위해서 하는 게 운동이다.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있는가,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힘이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이게 있다면 긍정적인 힘이 생길 것이다. 이 힘을 남과 함께 공유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 그러면 절망할 틈이 없다. 가슴으로 나누고 몸을 움직이는 사람은 절망할 틈이 없다. 자꾸 머리로만 생각해서 그렇다."
- 선생이 갖고 있는 희망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이 세상에서 보면 뒤늦게 정년을 맞이한 것이다. 서울에서 65살이면 전철표도 공짜다. 대학교수가 정년이 늦는데, 대학에 있었어도 올해 정년이다. 65살이 넘어도 일할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몸을 놀리고 마음을 써야 한다. 농사일에는 계약직도 임시직도 없다. 농사에는 어린애부터 나이 많은 사람까지 할 일이 다 있다. 정부는 실버타운이니 그 따위 소리 하지 말고 시골살림에 예산을 대폭 할애하라.
수용소에 있건 실버타운에 있건 다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돈이 필요 없다.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야 한다. 이런 곳에서 나 스스로를 내밀고 당당하게 살고 싶다."
"나 없어도 공동체 잘 굴러간다, 이제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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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부안군 변산공동체 윤구병 대표.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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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5월이면 이 곳을 떠나 세계 곳곳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내 기운은 물이다. 물은 밑으로 흐르지 않나. 대학 때도 길 걷는 사람이 되고 싶었나.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 뭔가가 돼 있더라. 그럼 다시 화들짝 놀라서 다시 길을 걷는다. 지금도 여러분들이 내가 뭔가 돼 있어서 찾아 온 것 아닌가(웃음). 모두 나를 속박하는 일이다. 여러분들 기대대로 살아야 하니 얼마나 답답한가.
나를 존경하지 말고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 이미 저질러놓은 것이 많고, '뻥' 친 게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솔직히 불편하다. 이제 떠나야지. 나 없이도 이제 (변산공동체) 잘 굴러간다. 마음껏 놀았지 뭐. 난 복이 많은 사람이다."
- 그 복을 여기 있는 대학생들에게 좀 주면 어떤가.
"20대는 박사 학위를 받아도 88만원 밖에 못 받는 세상 아닌가(웃음). 오죽하면 우석훈 박사가 짱돌을 던지라고 하나. 여러분 선배가 다 차지하고 자기들이 이 세상 다 말아먹고 하나도 안 주려고 한다.
맑은 하늘, 맑은 물, 땅 한 뙤기 남기지 않고 다 망가뜨리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토익·토플 만점 받아도 소용없고, 머리 굴려도 소용없다. 몸 놀리고 마음 써서 함께 더불어 사는 길을 먼저 찾아라. 자기 삶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맞서는 게 좋다. 영어책 덮고 짱돌을 들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