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4. 9. 20:52ㆍ정치
사진출처 : www.visitusa.com
우리는 미국과 악연으로 시작한 나라이다. 그리고 그 악연은 주로 한반도의 이북 지역과 인연이 많았다. 미국의 셔먼호가 대동강에 들어 와서 갖은 행패를 부리다 배가 불타버리고 떼죽음을 다하는 망신을 당한게 그 첫 인연이었으며, 1950년의 내전에 개입하여 제2차계대전에 투하되었던 폭탄보다 더 많은 양의 폭탄을 한반도에 투하하여 불바다로 만들기도 하였고, 역사상 최초로 미국이 개입한 전쟁 중 처음으로 이기지 못한 전쟁을 치룬 곳이 한반도였으며, 유일 막강 제국으로 군림하였던 60년대에는 북한을 정탐하던 간첩선이 북한군에게 나포되어 군사.외교적으로 큰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한편, 상당수의 국민들은 미국을 은인의 나라로 여긴다. 이는 한반도의 이남지역과 관련이 많다. 잿더미의 한국을 엄청난 원조로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었고, 이후 60-7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의 후원자로 인식되었으며,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화 인사들에게 역시 군사독재정권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지원자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중국 시장의 부상 이전에는 그 어떤 나라보다 많은 무역 흑자를 통하여 경제적 이득을 가장 많이 안겨준 봉이기도 했다.
한반도 이남에서의 미국에 대한 인식의 역전은 80년대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시작하였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군에 의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한 살육에 미국의 개입 혹은 방관이 있었음을 인식한 진보진영은 그 전 선배 세대들이 가졌던 미국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불식 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그즈음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미국이 자행했던 악마의 역할들이 속속들이 폭로가 되었다.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에 대한 인식의 역전은 일부 진보진영을 넘어 대중적인 확산을 야기하였다. 그 결정적 계기는 2002년에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그 해 동계 올림픽에서 미국 선수의 교활한 반칙으로 우리선수가 금메달을 빼앗기는 과정을 지켜본 젊은이들의 당연한 분노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급속히 확산되었고, 급기야 국가 대표간 축구 경기에서 그를 비난하는 퍼포먼스가 벌어지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두껍게 얼어 붙었던 얼음장 아래에 흐르던 물이 마침내 햇볕에 드러나 반짝이기 시작한 순간이 그 즈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두 여중생의 죽음에 대한 분노가 그해 겨울의 한반도 이남 지역을 불타오르게 하였고 그것이 지난 50년간 이남지역을 지배하였던 친근한 우방국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소멸되게 된 결정적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 88올림픽을 거치면서 한국은 선진 자본국의 하청업체를 탈피하여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물건을 팔러 다니기 시작하였고, 그 이전의 30년간 이룩한 물질적 풍요를 뛰어넘는 성장을 이루었다. 한편 그 이전과 달리 폭압적이고 일방통행으로만 이루어졌던 정치도 상당한 민주주의가 정착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사회 각분야에서 다양하고 창조적인 의식과 문화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아마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1992년 서태지라는 괴물이 나타났다. 아마 그때 쯤이었던것 같다. 어떤 FM방송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었던 코너가 팝송을 틀어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아마 그때 쯤부터 이런 프로들이 시들해져 가게된 듯 싶다. 아마 그리 된 것은 대중이 미국문화가 싫어서가 아니라 미국문화보다 더 끌리고 즐거워지는 우리의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부흥이라는 말이 적당할지 잘 모르겠다)도 곧 찾아 왔다. 허리우드 직배사의 진출로 완전히 망할 것 같던 한국영화도 스크린 쿼터라는 보호장치의 덕도 있었지만 자체의 기술적 완성도와 좋은 컨텐츠로 까다로운 한국 영화 팬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하며 전세계에서 인도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허리우드 영화를 능가하는 객석 점유율을 달성해버렸다.
아무리 한국영화 상영일수를 강제적으로 40%로 만든다고 해도 객석점유율을 40%로 만드는 것은 한국영화 자체의 관객 흡인력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그만큼 우리의 영화는 질적으로 성장한 것이고 적어도 한국인들에게는 그만큼 허리우드영화보다 훨씬 볼만한 영화가 된 것이다.
2003년 들어선 참여정부에서 전시 작전권반환이 기정사실화 되었고 이제 시간만 남았다. 10년전만해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일부 노망난 한기총 영감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런던지 말던지....'
이런 반면, 더욱 철저히 미국화되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 어떤 나라들보다 많은 미국으로의 기나긴 유학행렬, 미국시민권을 따겠다고 원정출산도 불사하는 괴기스러운 현상들, 이런 정반대의 현상은 사실 한국이 이미 미국화가 되었고 미국스러운 노래, 미국스러운 영화, 미국스러운 군대가 이미 완성이 된 증거에 다름 아니라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상당히 근거가 있는 견해라고 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일상속에서 타인의 인격을 평하는 용어로 '쿨하다'라는 말이 자주 쓰이게 되었다. 쿨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혹시 미국인들과 사업상 접촉을 해보신 분들 게신가? 내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께 일해본 경험을 상당히 좋은 느낌으로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라 매사에 있어 대화나 통화를 통하여 문제해결이 용이하다는 것이었다. 물건만 정확하고 상호 이익의 효과가 뚜렷하다는 답만 나오면 만사 오케이고 그 외 구질구질한 문제에 대한 고민이 전혀 필요가 없더라는 것이다.
개인적 교분을 갖고 있는 지인들은 재수 밥맛인 미국애들도 많았지만 일단 친해지면 매너도 좋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편을 들어주면서도 뒷 끝이 없어 참 좋은 친구들이 많았었다고 평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다인종 사회이고 계층별 차이도 큰 나라여서 백인백색이었지만 적어도 일단 친해진 사이에서는 한국 친구와는 다른 편안함이 있더라는 그런 이야기다.
여기서 공통되게 나오는 말이 '쿨하다'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나이 드신 세대들은 그 '쿨함'을 어찌 이해하고 받아 들일까? 나이가 젊더라도 다소 보수적이고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의 젊은이들도 포함하여 '쿨함'을 그리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는 것 같지는 않다. 정서가 메마른거 같다. 너무 돈만 밝힌다. 너무 계산적이다. 기타등등
역사, 경제, 문화, 일상 모든 면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항상 야누스같은 존재로 다가 오는 것 같다. 어느쪽이 미국의 진실인가? 악마일까? 천사일까?적인가 아니면 친구인가?
여러분들께 묻는다 2007년 우리에게 과연 미국은 무엇인가? 우리 이 질문에 반미 구호식으로 단순하게 대답하진 말자. 스스로 수긍할만한 답변을 한 번 해보자.
by 소부
* <무브온21블로거기자단>이란 : 무브온21에서 활동하는 논객들이 모여 구성한 기자단입니다. 무브온21의 주요 칼럼과 무브온21 논객들이 기획한 기사와 인터뷰를 내보냅니다.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진보진영, 대선 연연할 때 아니다 (0) | 2007.04.12 |
---|---|
[스크랩] 대북접촉은 대통령의 당연한 직무행위 (0) | 2007.04.11 |
[스크랩] 노 대통령 EBS 특강 ‘본고사가 대학자율인가’ (0) | 2007.04.09 |
[스크랩] 정태인씨의 비판에 대한 소박한 검토-반론 (0) | 2007.04.03 |
[스크랩] 노무현대통령, 한·미FTA타결 대국민담화 [동영상 전문] (0) | 2007.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