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너무도 까칠한 노무현

2007. 3. 23. 09:40정치

내가 자주 쓰는 표현이 “울고 싶어 할 때 뺨 때려라”라는 말이다. 정치를 표현할 때 흔히 표현하는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 준다”는 표현과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뉘앙스다.
사람의 감정을 건드려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과 이미 건드려진 감정을 추스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손학규나 정동영이 ‘체험, 삶의 덴장’을 연출하는 것이나 시장을 돌며 두 손 꽉 부여잡고 애타는 얼굴을 짓는 박근혜의 사진이나 이승연 닮은 슬픈 표정으로 삼보일배하던 추미애나 후자의 경우다.
우리 정치 스틸사진의 거의 대부분 이 경우다. 밀짚모자 쓴 박정희가 모내기를 하며 막걸리를 마신다거나 아조 검소하게 재건복 입고 공장에 들러서 허공을 응시하는 전두환의 빛나는 얼굴이나 모두 전형적인 후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도무지 노무현은 그런 사진을 보기가 어렵다. 가끔 현장을 나가는 동정이 나오기는 하지만 빈도가 적다.
실제 그런건지, 언론의 배제 탓인지는 몰라도 도무지 ‘눈물을 닦아 줄줄’ 모른다. 오죽하면 몇 년 전, 지금은 동쪽으로 가버린 공희준이 시장도 돌고 좀 돌아다니라고 노 대통령에게 줄창 주문했겠는가.

일단 이렇게 보자. 정치인이 혹은 정치가 국민의 눈물을 닦는 행위는 째려 볼 이유도 없고 삐딱하게 볼 이유는 더더욱 없다. 당연히 필요한 정치행위다.
문제는 이렇게 눈물을 닦아주는 행위가 단지 ‘관상용’에 끝나는데 있다. 말과 행동은 서민을 위하고 노인을 공경하고 근로자를 살피다가 방에 돌아와서는 싹 잊어버리고 그들에게 다시 눈물을 흘리게 만들 일을 한다는데 있다.

초가집도 없애고 새마을을 만들면서 다른 한 편에서는 재벌을 만들고 기업들을 지원해 오랫동안 알콩달콩 주고받는 관계를 만들고, 재벌들로부터 수금해서 그 중 일부를 고무신과 관광버스 서비스로 복지정책을 구현하는 아량이 거기로부터 비롯됐다.
아.... 너무 길게 설명했다. 단 한마디로, 표리부동이란 말이다.

반면, 노 대통령은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눈물을 흘리게 할 때가 많다. 대충 립서비스로 지나쳐도 될 것을 굳이 초를 치고 덤벼들고 우울한 사람 심정을 건드려 눈물 흘리게 한다.
시쳇말로 너무 까칠하다. 설렁탕은 고사하고 물에서 건져주니까 옷 벗어달란다. 이런 사람 가까이에 있으면 피곤하다. 도대체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런 유형의 사람이 공적인 일을 할 때는 어떨까. 조직에 긴장감을 주고 어느 사안 쉽게 넘기지 않고 따지고 검토하고 원리원칙에 맞게 일을 한다.
그렇다고 사적인 욕망을 공적인 일에 대입시키거나 드러내는 경우가 없다. 만약 이런 스타일이 상사라면 아래 사람들 반 죽는 것이고, 반면 그 조직은 탄탄해지고 직원들의 업무 능력은 향상된다.

최근 들어 노 대통령의 발언 횟수가 늘고 이에 따라 그 까칠한 말솜씨가 발휘되고 있다. 고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손학규를 겨냥한 발언은 원리원칙에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타이밍상 듣는 지지자들 뜨악하게 만든다.
김찬식이 발끈하는 것도 당연하다. 아니... 가만 내버려 두면 손학규가 탈당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한나라당과 대립각을 크게 세울텐데 나중에 해도 될 말을 지금 해서 전선을 이동시키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게다가 그 말은 또 뭔가. 한미FTA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 할 수 있는 농업 문제에 대해 저렇게 까칠하게 말할건 또 뭐란 말인가.
“한미FTA 체결이 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농업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보상할 대책을 강구하겠다” 정도라도 발끈해 하는 판에 까칠하게 원론적인 말을 해 버린다.

누가 그 뜻과 진정을 모르나. 굳이 확인사살해서 열받은 사람 눈물을 쏙 빼 버릴게 뭐란 말인가.
시간이 갈수록 지지자들을 흥나게 하는 경우보다는 힘 빠지게 만드는 발언이 늘어난다. 조종동을 장식한 대통령 찬미가가 영 속을 거북하게 만든다.

일단 속 뒤집히는걸 참고 다시 역발상을 해 보자. 고건에게 노 대통령이 한마디 했더니 슬그머니 사라졌다.
왜? 노통이 무서워서? 그렇게 생각하는 노빠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오버다. 그렇지 않아도 그만 둬야 할까 말까 망설이는 와중에 핑계 김에 도망간 것이다.
왈, 울고 싶을 때 뺨 때려줬다.

만약 그가 그런 망설임이 없고 승리의 월계관을 꿈꾸고 있었다면 노 대통령의 발언을 물고 늘어지며 대립각을 세웠을 것이고 건곤일척의 일합을 겨뤄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그래야 진정 비노 혹은 반노의 상징이 되어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월계관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텐데, 결국 그럴 자신도 생각도 없음이 드러났다.

똑같다. 아니 더 배려했다. 한나라당 내에 있을 때는 아무 말 없다가 탈당을 하니까 하루도 안 지나 손학규를 툭 쳤다. 그것도 가장 아픈 부위를 건드리며...
그런데 손학규의 반응은? “진보계의 씌레기” 비슷한 말만 하고는 입을 닫았다. 입을 닫으려 해서 청와대에 또 한 번 글이 올랐는데도 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니 무브온 게시판을 달구던 손학규 이야기가 사흘을 못 넘기지.

이런거다. 일본 프로야구의 요미우리나 우리나라의 삼성 야구단의 선수 트레이드 전략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상대에 있으면 능력이 뛰어나 자신을 괴롭히는 선수를 자신의 팀으로 데려오는 전략”이다.
이렇게 데려와서 자신의 능력으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면 당연히 좋고, 자신의 팀에서 비실비실 적응 못 해도 그걸로도 족하다는 것이다.

그런 선수가 입단을 할 때 어떻게 할까. 둘 중 하나다. 속에는 시커먼 전략이 있으면서도 기자들 앞에서 마냥 추켜세우는 방법과 첫 대면에서 “네가 팀을 배반하고 돈에 넘어온 그 선수냐”고 까칠하게 대접하는 방법이다.
섭섭해도 어쩌랴. 이미 계약은 끝났고, 팀을 떠났는데...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고 보란 듯이 성공하는 길 밖에 없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지던가.

농업 문제에 대해 대통령의 발언은 심각한 논점을 포함시키고 있다. 농업을 일반 시장과 같이 취급할 것인지, 국가적인 전략 산업으로 보호 내지는 배려할 것인지, 일반 시장으로 다루되 별도의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인지 따지고 들어가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보수언론들은 꼴같지 않게 찬양일색이고 정치인들은 꿀먹은 벙어리다. 환장할 노릇이다.

노 대통령은 이미 자신의 판단을 드러냈는데, 한미FTA를 반대하거나 조건부 찬성하는 정치인들 모두 반응을 하지 않는다. 뺨을 때렸는데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허공을 쳐다보는 꼴이다.
아니 이 양반들아!! 억울하고 분하지도 않냐? 눈물 한 번 흘리고 상대의 뺨을 자신도 때릴 용기가 그렇게 없나?
노무현을 넘고 극복하기는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자빠졌다.

노 대통령의 말과 정책에 대해 당당하게 반대할 명분과 콘텐츠를 갖추지 못 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한 지점을 꽉 찍으며 까칠하게 “이게 옳소” 하니까 면전에서 “이의 있습니다”고 말은 못 하고 돌아서서 “성격 참 까칠하네” 소리만 지르는 꼴이다.
유리한 포지션 탓도 있지만 차라리 노회찬이 여권의 어느 정치인보다 백 배 낫다. 옳으면 거품 물고 찬성의 목소리를 올리던가 틀리면 얼굴 붉히며 반대를 하던가...

까칠한 노무현을 이겨낼 정치인, 아니 최소한 그와 맞짱을 뜨는 제스처라도 내는 정치인이 없다. 천정배는 탈당해 놓고도 이도 저도 아니고...
손학규는 자리 갈아주니까 일단 뒤로 물러나 장고를 하고 있고, 모두들 이도 저도 아니고 갈팡질팡이다.

노 대통령이 뺨 때려 줄 때 울어야 한다. 실컷 울고 나서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던가, 분노의 칼을 갈던가... 좀 머리를 써 바바. 응? 뭔 말인지 알지?? 응?
까칠한 노무현? 이젠 지지자들도 마이 힘들거든?

*** 뱀발 아님

미리내 님!! 혹시 이 글을 읽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통해 공개적으로 사과드립니다. 님 덕분에 까칠한 노무현을 생각하게 됐고, 님 역시 제게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줬습니다.
하여튼 감사합니다.

 

-사도바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