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감성적인 너무나 감성적인-검은양

2007. 1. 25. 20:53정치

요즘은 워낙 많은 뉴스들이 생기는 판이라 채 한달도 되지 않은 일들이 마치 오래 전 일같이 느껴져서 이 일화를 언급하는 것이 뜬금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필요하니 이야기해 보자. 노대통령이 개헌 문제를 제기하자 박근혜가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했다. 평소 수첩공주니 100단어 공주니 하며 조롱거리로 전락한지 오래인지라 이런 반응이 생소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박근혜가 대선 후보감으로 상당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좋다’ ‘나쁘다’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그러나 국가 시스템의 근본을 이루는 헌법에 관한 논의는 주관적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판단의 문제이다.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라는 것은 가치판단이다. ‘항상 죄를 짓는 사람들이 있어 왔으므로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것은 사실판단이다. 국가가 되었든 어느 특정 집단이 되었든 간에 지도자는 사실판단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판단을 바탕으로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토론 중에 사회자에게 ‘지금 나랑 싸우자는 것이지요?’라고 하고, 생명에 지장도 없는 사고를 당하고 나서는 정치판에서 ‘다시 태어났다’라고 떠드는가 하면, 지금처럼 국가의 시스템을 다루는 문제 제기에 대해 ‘나쁜 대통령’이라는 식의 언급을 하는, 공과 사도 구분하지 못하고 가치판단 밖에 할 줄 모르는 박근혜가 대선 후보 중의 한명으로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잘 나가는 대한민국의 걸림돌 중의 하나이다.


이게 박근혜와 그 지지자들만의 문제인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불과 며칠 전에 노대통령의 신년 연설 후 정동영이 말하기를 "사실관계는 사실관계 대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지만 국민은 그것보다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느낌으로 정부를 평가한다"라고 했다. 국민들은 느낌으로 판단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는 점에서 정동영은 정치인으로써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국회의원 정도 해 먹을 수 있는 정도일 뿐이라는 것이 현재의 정동영의 딜레마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얼마나 느낌을 좋아할까?


어느 아파트 광고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00 아파트는 어떤 점이 좋아요?” “여자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지은 아파트거든요.” 여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없고 그것을 어떻게 충족시켰는지에 대한 말도 없다. 그냥 여자의 마음에 쏙 들게 지었다는 거다. 어느 한자 학습지 광고에는 장엄한 배경음악이 깔리면서 “천, 지, 인, 하늘과 땅이 만났다. ....”라는 대사가 목소리 좋은 성우의 음성으로 흘러나온다. 한자 공부하는데 천지인은 왜 나오며 하늘과 땅이 왜 만나는지는 아예 관심의 대상도 아니다. 범주를 좀 크게 잡으면 이런 것을 신비주의 마케팅이라고 한다. 뭔가가 있다 또는 없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이 중요하다.


마케팅만 그런가 하면 일상생활에서도 신비주의적 경향은 두드러진다. 태백산맥과 백두대간은 어떻게 다를까? 굳이 따지자면 경로가 좀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냥 산맥과 백두대간은 좀 다르다. 왜 다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백두대간은 뭔가 민족의 혼이 담겨있는 듯해서 보호해야 하고 신성하게 다루어야 할 그 무엇이다. 요즘 젊은 층에서는 비호감이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왜 싫은지는 이야기하면 안된다. 그러니 비호감이라는 지극히 감성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이렇게 신비주의 마케팅이 제법 잘 먹혀들고 또 일상생활 속에 감성적 언어들이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는, ‘감성적인 너무나 감성적인’ 한국 사람들에게 박근혜같은 정치인이 주목을 받는 것이 결코 이상한 현상인 것은 아니다.


정치지도자로써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사람들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아니 마땅히 해야 할 대통령의 개헌 문제 제기에 대해 지금은 안된다라거나 정략적이라고 떠드는 사람들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치인인 대통령에게 정치를 하지 말라거나 정략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사람들과 그냥 비호감이라고 하고 마는 아이들하고 차이점이 과연 무었일까? 게다가 공적인 영역에서 주관적 가치판단을 일삼기는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노대통령이 보수로 부터도 비난받고 진보로 부터도 비난받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지역주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 대해 향수를 느끼고 좋은 감정을 가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 지역을 바탕으로 국회의원을 뽑고 대통령을 뽑으려 한다는 점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민주주의 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국민들의 비율이 70%가 넘는 나라에서 그게 자신들에게 정말 이익이 된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자신들에게는 별로 이득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죽어라고 자기 지역 출신 정치인을 선호한다는데 있다.


자원의 서울 편중이 문제가 된다고 해서 행정수도를 옮기겠다는데 반대하는 지방 사람들 (한술 더 떠서 그 행정수도가 자신들의 땅에 온다는데도 막무가내로 한나라당 찍는 사람들), 차떼기에 성추문에 취중 행패에 온갖 해괴한 짓을 해도 죽어라고 한나라당 찍는 경상도 사람들, 서민들의 집값 안정을 위해 그리고 안정적 경제 성장을 위해 부동산 가격 상승을 잡겠다는데도 6억 이상씩 되는 집을 가진 이상한 서민들의 논리에 휘둘려 같이 반대를 하는 사람들 (더 웃기는 것은 그러고도 돌아서서는 또 집값 안오른다고 방방 뜨는 족속들), 이런 사람들이 모두 합해서 절반을 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니 누가 대통령이 된들 좋은 대통령되기는 애당초 글러먹었다.


노대통령이 구시대의 막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노대통령을 끝으로 구태를 벗지 못한 정치인들을 배격하고 새 시대의 처음을 이끌어 갈 정치인을 찾아내고 지지해서 지도자로 뽑아야 한다. 대통령이 비호감이어서 싫다는 대한민국 국민들 정신 좀 차려라.

 
출처 : MoveOn21.com
글쓴이 : 가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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