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대형할인점보다 더 무섭고 치명적인 것
2006. 12. 16. 19:22ㆍ관심사
(서론이 좀 길지만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끝까지 반드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가 사는 곳은 지방의 소도시이다. 몇년전부터 대형할인점 2개가 들어와서 영업중이다. 지금부터 간략하게나마 일반 대중이 열광하는 대형할인점의 그늘에 대해 써볼까 한다. 모두가 좋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두를 서서히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것의 실체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 부모님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신다. 부모님께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년에 5일도 채 안 쉬시며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왔다. 그래서 나는 대형할인점이 지역경제와 서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제3자 입장에서 혹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절실히 느끼거나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장사꾼의 아들이자 소도시 시민인 내가 보기에, 대형할인점의 '매력'과 '위력'은 그야말로 놀라운 수준이었다. 몇년전 대형할인점 2개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자, 원래 있던 중소규모의 토착 대형마트는 새로 들어온 2개 업체가 건물을 다 짓기도 전에 부도가 나 버렸다. 놀랍지 않은가? 그리고 그 2개 업체가 문을 열고 한 1~2년 동안에 재래시장은 그야말로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가끔 가게에 들르는 내가 봐도 시장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놀랄 지경이었을 정도였으니. 그나마도 대부분 30대 중반 이상, 보통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좀 배웠다는 사람들조차 이런 대형할인점의 폐해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점이다. 우리 과의 어느 교수님이 수업중에 말씀하시길, "대형할인점에서 카트 끌고, 애를 카트에 태우고서 여유롭게 오가며 물건 담고... 그러면 뭐랄까...생활이 좀 '업'된 느낌이 들지? 그게..." 난 그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나는 왜 모두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대형할인점의 무자비한 사세 확장을 비판하나? 눈에 보이지도 않고, 지금 당장 피부로 느껴지지도 않지만 이건 우리 모두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스스로 목을 조르는 짓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미 다른 글에서도 지적해 주셨지만, 이걸 간단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나처럼 장사꾼의 자식이 아니어도 여러분은 대형할인점으로 인해 좋을 게 없다. 궁극적으로는. 왜? 여러분이 자영업자가 아니라면 아마 직장인일 것이다. 여러분네 회사가 무엇을 만드는 회사이든, 여러분은 이미 대형할인점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고, 여러분이 느끼지 못하더라도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왜? 대형할인점에서는 그야말로 '안 파는 물건이 없는' 현실이고, 모든 경제 주체는 서로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그럼 그게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직장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관계가 분명히 있다. 내 주위에는 평범한 직장인 친구나 선후배들이 많다. 이중 상당수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대형할인점에 물건을 납품한다. 그런데 뉴스에서 가끔 보도가 나오듯이, 대형할인점의 가격 후려치기 횡포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거래를 끊을수도 없고, 울며 겨자먹기로 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할 때마다 그들의 입에서는 원성이 자자하다. 그럼 회사가 대형할인점에 의해 가격 후려치기를 해서 형편없이 낮은 값에 물건을 납품하는 게 여러분과 무슨 관계가 있나? 회사 입장에서는 이윤이 줄어드니 당연히 어디선가 쥐어짜기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쥐어짜기를 할 곳은 많다. 내가 파는 물건의 부품이나 재료 등을 납품하는 회사에 다시 가격 후려치기를 요구하든가, 아니면 우리 회사 직원들의 월급을 억제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벌써 여기서 해당사항이 생길 것이다. 회사가 낮은 납품가에도 불구하고 경영을 계속하기 위해 월급을 억제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러나 더욱 치명적인 것은 여러분네 회사와 거래하는 회사의 직원들이다. 여러분네 회사가 대형할인점에 의해 박한 이윤이 강제되므로, 여러분네 회사는 거래처인 B회사에 다시 원자재의 가격 후려치기를 요구하게 된다. 그럼 그 회사도 다시 여러분네 회사가 취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 악순환 현상은 매우 중요하다. 얼핏 생각하기에 대형할인점에서 가격이 낮아지니 모두가 이익일 듯하지만, 실상 이익은 할인점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 무슨 일에 종사하든간에 아마도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물건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금융, 서비스에 관련된 업종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이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당장 눈앞의 '놀라운' 가격표에 현혹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이것은 이득이야'라고 생각하며 물건을 산다.(또 할인점의 특성상 불필요한 대량 구매가 이뤄진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서는, 도무지 두터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자신의 월급 봉투를 보며 한숨을 지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나쳤던, 여러분이 누추하다고 선입견을 갖고 있는 재래시장에는 눈길도 주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또 한가지를 짚고 넘어가자. 그렇다고 재래시장에 가지 않으면 뭐가 안 좋다는 것인가? 여러분은 '자본의 역외 유출'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한마디로 대형할인점이 여러분네 도시에서 돈을 벌어 그 돈을 서울로 유출시킨다는 것이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지역내에서 자본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그럼 은행에도 돈이 예전보다 줄어들게 된다. 전에 재래시장에서 써서, 상인들이 은행에 예금하고, 그 돈을 지역민들과 지역 기업이 다시 대출하고 갚고(아마도 지역 기업은 여러분이 다니는 기업일지도 모르겠다), 은행은 거기서 이윤을 얻고 자본은 각 경제 주체에 의해 계속 늘어나던, 역내 자본의 선순환이 사라지는 것이다. 지역내 자본이 줄어드니 은행도 속수무책이다. 고객을 대하는 은행의 눈높이는 점점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여러분은 무턱대고 '은행이 고객 알기를 우습게...'라고 은행을 욕하지만, 은행으로서도 대책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게 은행의 책임인가?(참고로 서울의 한 동에 있는 은행 지점과 지방 어느 소도시의 전체 지점수가 똑같다는 경우도 있다) 이걸 두고 별 상관없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글쎄, 여러분이 자본의 지나친 대기업 집중과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이 점은 넘어가도 좋다. 그러나 그럴 사람이 얼마나 될까? 뜻밖에도 이런 자본의 역외 유출 현상에 대해 매우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리플로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사람과 대형마트의 연관성을 도저히 모르겠다'고 한다. "나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여러분이 자동차를 파는 세일즈맨이라고 치자. 혹은 자동차 회사에 부품을 대는 회사의 직원이라고 치자.(자동차는 할인점에서 팔지 않는데?) 그래도 경우는 똑같다. 자, 대형할인점에 의해 역내 자본이 점점 줄어들고 역내 경제 주체들은 점차 영세화된다. 그럼 지역내 경기가 위축될 것이라는 것쯤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경기가 위축되니 전혀 할인점과 관련없어 보이는 자동차 소비도 줄어든다. 그럼 여러분이 세일즈맨이든 부품 회사 직원이든 여러분네 회사는 타격을 입을 것이다. 자, 지금까지 늘어놓은 이야기들, 여러분은 이 상황들에서 예외일 수 있는가? 예외일 수 있다면 주저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계속해서 대형할인점에서 화려하고 "생활이 '업'된 듯한" 쇼핑을 즐기시라. 그러나 웬만한 사람들은 저 위에 든 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모든 경제 주체들은 전혀 관련없어 보여도 서로 알게 모르게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그런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라면 굳이 대형할인점에서 싼 값의 '매력'을 느끼며 쇼핑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금 여러분의 소비 행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턱대고 '지저분하고 누추한 재래시장과 장사꾼들'을 비난할 게 아니라, 혹은 느닷없이 정부를 욕하면서 대형할인점 예찬론을 펴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왜 우리 동네에는 대형할인점이 없냐고 투덜대며 시청을 비난하거나 정부를 비난하고 재래시장을 비난하는 짓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라고들 한다. 누군가는 이 어수선한 시대를 틈타 정치적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자들이 지지하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고 한다고 치자. 이런 현상들이 사라질까? 좀 크게 보자면 양극화 현상이 사라질까? 설령 모든 것이 잘 되어서 불경기가 사라질 수는 있어도 계층간 소득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진다. 왜냐하면 대중 스스로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섬뜩하지 않은가? 지금 여러분이, 국민이 싫어하는 정권이 물러나면 경기가 살아날 것 같은데, 경제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는 시대라니 말이다. 대중이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어리석음은 여기저기 널려있다. 그리고 이것은 기업에 의해 가속화된다. 예를 들어 몇년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싸진 옷값, 어떻게 해서 그런걸까? 맞다. 중국에서 만드니까. 이건 안 좋은 현상이다. 왜? 여러분은 지금 당장 옷을 싸게사서 좋을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어느 섬유 기업에서 일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공장의 중국 이전으로 인해 직장을 잃었을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더 많아질 것이다.(제조업 노동자에 국한될거라고 생각하나? 이미 미국의 수많은 IT 관련 종사자들이 인도의 값싼 노동력에 의해 실업자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위험스러운 변화를 대중이 느끼지 못한다는 점 말이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시대가 낳은 문제점은 이미 우리곁에 와 있으며,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여러분이 싫어하는 대통령이나 정부, 정권탓만이 아닐수도 있다. '양극화'니 '자본 집중'이니 뭐니 하는 골치아프고 어려운 개념들은 이렇게 우리들의 손끝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대세'라고 수수방관하며 대형할인점과 소비자들을 두둔한다. 그러나 그 '어쩔 수 없는'이라는 간단한 한마디 뒤에서 엄청난 실업과 경제구조 왜곡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편리하고 즐거운 가격표에 환호하며 소비를 즐기는 여러분들이 '어쩔 수 없이' 궁극적인 피해자가 된다는 점이다. 할인점 예찬론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이것조차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은 알고 있으되, 그게 '양극화'와 거의 비슷한 뜻이라는 점은 잊고 있으며, '독과점은 나쁘다'는 명제는 알고 있으되, 스스로 거대한 독과점 체제에 빠져들고 옹호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소비를 하며, '양극화=중산층 붕괴 현상'이라는 점을 잊고 있다. 그리고 "나는 해당되지 않는 일들"이라고 착각한다.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그것이다. 대형할인점이 인기를 끌고 소비자들이 전통적인 소비 행태를 외면하고, 경제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짓이라는 점을 모른다는 것, 그게 가장 무서운 것이다. *참고로 대형할인점에서 알바 해본 적이 있는 내 경험에 따르면, 그곳에서 파는 상품의 값이 정말 싼 것인지도 의구스럽다. 또한 가전제품과 식품을 비롯한 여러 상품들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공급자가 아예 따로 만든 '할인점용' 상품이 따로 있다는 것도 아시는지?(위에 쓴 파괴적인 가격 경쟁이 제조업을 뒤틀리게 하고 있다는 증거의 하나가 아닐까) 물론 값이 싼 만큼 품질 등은... 어떨까? 전에 이에 대한 블로그를 본 적이 있는데... 어쨌든, 우리는 과연 그곳에서 현명한 소비를 하고 있는 걸까? |
출처 : 경제방
글쓴이 : 똑바로 살아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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