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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0. 19. 21:48정치

칠레를 통해 바라본 우리의 개혁 전망

- 결국 개혁은 이중의 저항, 자본과 외세의 저항에 민중들까지 설득시켜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며, 불가능의 예술이다

마레

북핵 관련 방송을 보던 어린 아들이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니예요?라고 묻는 이 비상한 시국에, 개혁의 미래나 참여정부의 공과를 따지는 건 시덥잖은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북핵에 대해서 내가 할 말은 북미 간 직접 대화 말고 다른 방법이 없는데, 미국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북한은 핵만이 살길이라 끌로 파고 있으니, 답답하다는 말뿐이다. 종국에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갈 일인데, 다행히 당분간은 정권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 남한의 동의 없는 북한 폭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고마울 따름이다.

정운영 선생의 유고집을 읽다가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 이야기에 필 받아 몇 줄 남긴다. 다 아시다시피 아옌데는 미국이 사주한 군부 쿠데타에 맞서다 총격으로 사망했다. 공식 발표는 자살이었지만, 한 발의 총탄으로 그처럼 머리가 완전히 산산 조각나고 뇌수가 흘러나오지는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옌데는 공군의 비행기 폭격과 육군의 대포 발사로 박살난 게 분명하다.

아옌데의 실각과 사망은 그가 칠레 추키카마타 구리광산을 국유화한다는 발표를 한 순간 결정났다. 이 광산의 소유자는 미국의 거대 자본인 아나콘다 구리회사였다. 이 회사는 19세기 말엽 미국 콜로라도 아나콘다 지역에서 발견된 거대한 구리 광산을 채굴하던 조그만 회사였지만 불과 이십년 뒤에는 세계 곳곳에서 구리를 채굴하는 회사로 커진다. 아나콘다는 케네콧 구리회사와 더불어 칠레 국부의 대부분이었던 구리를 가혹한 헐값에 사들여 큰 부를 쌓았다.

구리는 ‘칠레의 봉급’이고 ‘외화벌이의 밑천’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모든 다국적 기업이 그렇듯 칠레 구리광산을 장악한 미국 자본은 칠레 구리를 수탈하고 칠레 민중을 도탄 속으로 몰아넣었다. 민중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아옌데가 구리광산을 국유화한 것은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곧바로 미국의 반격이 시작된다. 구리 재고량을 풀어 국제 구리 값을 폭락시켰고, 모든 차관은 동결되었으며, 국제 금융가에서 칠레 발 주문과 요청은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누구도 칠레의 신용이 왜 그렇게 형편없이 허물어졌는지 답변할 수 없었지만, 누구라도 대답은 알고 있었다. 미국이 교육시킨 반정부 노조활동가들이 국내에서 파업을 주도했고, 마침내 쿠데타가 일어났던 것이다.

아옌데의 정책은 당시 좌파 정권이 펴던 정책에 비하면 매우 온건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당선 이후 “저우언라이는 ‘서두르면 안 됩니다. 모든 일을 한꺼번에 풀려고 하지 마십시오.’란 편지를 보냈고, 카스트로 역시 ‘마르크스라는 만병통치역의 쉬운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온건했던 정책마저 좀 더 조심스러워야 했던 것이다.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이제 돌아와 우리나라를 보자.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우리가 개혁으로 가고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혼재돼 있으며, 대통령의 리더십이 잘 작동되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뒤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임기가 남아 있는 대통령을 평가하는 것은 이르다. 좀 더 너그러운 태도로 그가 선택하는 방향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개혁이란 총체적인 주제를 놓고 보자면 우리는 몇 가지 되돌아볼 점이 있다고 믿는다. 특히 칠레의 경우에서.

아옌데는 자기가 믿는 심념에 따라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민중은 그의 개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자본가와 중산층이 집중적으로 저항했지만, 기층 민중조차 정부의 개혁정책에 저항하고 맹목적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에 나서기도 했다.

아무리 미국이 교육시키고 침투시킨 반정부 노동운동가들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라고 강변해도, 칠레 노동자들이 임금을 당장 올리라고 과격한 시위를 하거나, 국가 유통망의 전부였던 트럭 파업을 빈번히 자행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개혁은 이중의 저항, 자본과 외세의 저항에 민중들까지 설득시켜 가면서 추진되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며, 불가능의 예술이다. 자본과 노동 또는 민중의 이중 공격을 풀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사회적 대타협이다. 우리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경제 모델 중 하나인 스웨덴이나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독일의 경우를 봐도 자본과 노동의 타협은 경제 성장의 쐐기돌이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스웨덴은 1920년대 서구에서 가장 극심한 노동자 파업이 빈발했던 나라였다. 하지만 발렌베리 가문과 노동자들이 극적으로 사회대타협을 이뤄내면서 이후 기록적인 복지와 경제성장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자본은 노동에게 충분한 임금을 약속했고 노동은 자본에게 파업이 아닌 대화를 선물했다.

지금은 경제가 상당히 활력을 잃고는 있지만, 독일(서독) 역시 경제를 위한 사회대타협을 경험했다. 역사상 최강의 노동조합임을 자부하는(사십년간 단 한 번도 임금교섭이나 총파업에서 져본 적이 없는) 독일 금속노조가 총파업을 단행했다 스스로 푼 사실이 있다. 파업으로 얻는 이익보다 국가 경제를 위해 패배를 자인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를 특정하는 단어들이 많다. 빨리빨리 따위는 옥스퍼드 대사전에도 올라 있다고 들었다. 나는 그 많은 단어들에 정보화를 통한 개방성을 들고 싶다. 도무지 이 나라에는 비밀이 없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을 통해 드러났지만, 이 나라의 최고 실력자들 대화까지 공개되는 것은 그야말로 한국적 투명성(개방성)에 힘입은 바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나라 전체의 투명성이야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정보화 이후로 동네에서 술값 가지고 싸우다가도, “너 자꾸 그러면 인터넷에 올려버린다.”는 말이 협박이 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 밖에 없지 않은가? 평등의식이 가장 강하다는 우리나라는 정보화 세계, 인터넷이란 장을 통해 만개할 가능성이 아주 많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이런 투명성이 사회 대타협과 결합하면 어떻게 될까. 현재로선 그 전망이 어둡다. 공적인 의제를 설정하는 기능을 수구 꼴통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만 꼴통이 아니다. 포털이 장악해버린 뉴스보기 기능은 사람들을 좀 더 속물적으로 좀 더 경박하게 좀 더 즉물적으로 만들기 바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좋은 글들을 쓰고 퍼나르고 언로를 장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다. 어떤 정책에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개혁이란 참으로 어렵고 기나긴 여정에 돌맹이 하나 치운다는 마음으로 개혁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준비됐을 때 개혁은 이뤄진다. 그 어떤 초인이 있어 청포도 먹다 하얀 삼베수건으로 땀 훔치고 돌아가는 길에 담배 한 대 물듯 해치워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자본도 우리들의 노동도 아직 아니라면, 대관절 개혁은 타협은 누가 이룰 것인가. 김근태가 이룰 것인가?

읽어주신 님들의 평안을 빕니다.
마레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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