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편지, 어버이날에...

2015. 5. 10. 06:08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대통령의 편지, 어버이날에...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저에게는 큰절을 두 번 하는 날입니다. 한 번은 저를 길러주신 저의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절입니다. 또 한번은 저를 대통령으로 낳고 길러주시는 국민여러분께 감사드리는 절입니다.

저는 경남 김해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판자 석자를 쓰시는 아버지와 성산이씨였던 어머니의 막내로 태어 났습니다. 세속적으로 보면 저도 크게 성공한 사람이지만 돌이켜 보면 부모님이 많은 것을 주셨기 때문에 오늘이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난을 물려 주셨지만 남을 돕는 따뜻한 마음도 함께 물려주신 아버지셨습니다. 매사에 호랑이 같았던 분이지만 바른길을 가야한다는 신념도 함게 가르쳐 주신 어머니셨습니다. '내가 아프면 나보다 더 아픈 사람, 내가 슬프면 나보다 더 슬픈 사람, 내가 기쁘면 나보다 더 기쁜 사람'... 오늘 그 두 분에게  하얀 카네이션을 바칩니다.

 

 국민여러분!
대통령의 어버이는 국민입니다. 국회의원의 어버이도 국민입니다. 한 인간을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정치개혁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먹기에 달린 일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고 명시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이 나라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군말 없이 따라야하는 지상 명령입니다. 여러분의 관심하나에 이나라 정치인이 바뀌고 여러분의 결심 하나에 이 나라의 정치는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 관심과 결심 또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버이의 마음을 가지시면 됩니다. 어버이는 자식을 낳아 놓고 "나 몰라라"하지 않습니다. 잘하면 칭찬과 격려를 해주고 잘못하면 회초리를 듭니다.

농부의 마음을 가지시면 됩니다. 농부는 김매기 때가 되면 밭에서 잡초를 뽑아 냅니다. 농부의 뜻에 따르지 않고 선량한 곡식에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라는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사리사욕과 잘못된 집단이기주의에 빠지는 일부 정치인, 개혁하라는 국민 대다수의 뜻을 무시하고 개혁의 발목을 잡고 나라의 발목을 잡으려는 일부 정치인. 나라야 찢어지든 말든 지역감정으로 득을 보려는 일부 정치인. 전쟁이야 나든 말든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정치인.

이렇게 국민을 바보로 알고 어린애로 아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국민 여러분과 제가 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은 어떤 저항과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대통령의 의무인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지키는 것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헌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하실 일은 어버이의 마음을 가지시고 농부의 마음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에게도 어버이의 회초리를 드십시오. 국민여러분의 회초리는 언제든지 기꺼이 맞겠습니다. 아무리 힘 없는 국민이 드는 회초리라도 그것이 국민의 회초리라면 기쁜 마음으로 맞고 온 힘을 다해 잘못을 고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 있는 국민이 드는 회초리라도 개인이나 집단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드는 회초리라면 매를 든 국민 또한 국민이기에 맞지 않을 방법은 없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너 내편이 안되면 맞는다'는 뜻의 회초리라면 아무리 아파도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국민여러분의 뜻을 위배하라는 회초리라면 결코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굴복하면 저에게 기대를 걸었던 많은 국민들은 기댈 데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굴복하면 저에게 희망을 걸었던 많은 국민들이 희망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여러분!
그런데 하나 경계해 주실것이 있습니다. 바로 집단이기주의 입니다. 저는 대통령이 되기 전,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권 변호사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힘있는 국민의 목소리보다 힘 없는 국민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체질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수행할 때는 그 누구에게 혹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 수 없습니다. 중심을 잡고 오직 국익을 위해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중심을 잃는 순간, 이 나라는 집단과 집단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통치는 다릅니다. 비판자와 대통령이란 자리는 다른 것입니다. 저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익이라는 중심을 잡고 흔들림 없이 가겠습니다.

 


국민여러분!
저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꼭 이루고 싶은 희망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이익집단은 있지만 집단 이기주의는 없는 대한민국입니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국가와 민족앞에서는 한발 물러서는 대한민국, 좀 더 가지고 덜 가진 것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돕는 대한민국, 동에 살고 서에서 사는 차이는 있지만 서로 사랑하는 대한민국, 바로 화합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입니다.
다른 하나는 세대 차이는 있지만 세대 갈등은 없는 대한민국입니다. 자식은 부모세대가 민주주의를 유보하며 외쳤던 "잘 살아보세"를 존중하고 부모는 내 아이가 주장하는 "개혁과 사회정의"를 시대의 메세지로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자식은 부모에게서 경험을 배우고 부모는 자식에게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배우는 대한민국. 자식은 밝게 자라게 해준 부모에게 감사하고 부모는 자식의 밝은 생각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대한민국. 바로 사랑으로 행복한 대한민국입니다.

 

 

 국민여러분!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높은 자리, 많은 것을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부모님을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한 것, 사랑하는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지 못한 것, 사랑하는 가족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답니다. 저도 IMF 후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전국의 노동자들을 설득하러 다니느라 어머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일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저의 이 편지가 부모님의 은혜를 한 번더 생각하는 계기, 대한민국이라는 가족 공동체를 한 번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효도 많이 하십시오.
우리 모두의 가슴에 마음으로 빨간 카네이션을 바치며...

 


대한민국 새 대통령 노무현ㅣ2003년 5월 8일